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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형식 벗고 자기만의 춤 구축한 9인의 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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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2-10 13:25 조회2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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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29> 전통춤판 ‘춤추는 남자들’

전통 형식 벗고 자기만의 춤 구축한 9인의 명무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09 19:15:19
  •  |  본지 19면

 

- 병신춤·처용무·도살풀이춤 등
- 저마다 개성 한껏 드러낸 몸짓
- 그 신명에 절로 어깨 들썩거려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남성 춤으로 전승한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 한량무’ 전수 장학생 선정 때 여성을 배제한 부산시의 결정이 성차별에 의한 평등권 침해라며 제동을 걸었다. 인권위는 “남성 춤의 정체성을 잘 살릴 능력이나 예술성을 지닌 여성이라면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권고했다. 이 권고에 따라 여성 두 명이 전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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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옥의 ‘양반춤’. 춤 문화 연구소 제공
이처럼 남성 춤, 여성 춤의 구별이 무의미해지는 현실에서 ‘춤추는 남자들’(춤남)의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 남성성이 강한 춤을 남자가 춘다는 것인지, 춤을 직업 삼아 오랜 시간 버텨 온 남자 춤꾼들의 공연인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춤을 성별보다 춤 자체로 평가해야 한다면 ‘춤남’은 춤의 남성성이나 남성의 춤에 초점을 두기보다 춤에 일생을 건 무용계에서 소수인 남자들의 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지난달 24일 동래문화에서 열린 열여섯 번째 ‘춤남’에는 궁중 춤과 민속춤의 명무들이 무대에 올랐다. 오랜 시간 ‘춤남’을 함께한 이들의 춤이 어떻게 변하고 깊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공연의 미덕이다.

이제 그날의 춤을 하나씩 되짚어 보자. 정승천의 ‘허튼 병신춤’은 정해진 형식이 없는 자유로움(허튼)과 억압된 신체를 신명으로 해방하는 병신춤의 특징을 섞어 현실 모순을 온몸으로 견디는 민중의 건강성을 담았다.

이진호의 ‘처용무’는 궁중무용의 기품을 한껏 드러냈다. 기교 없이 단순해 보이고 반복되는 동작에 활력과 깊이를 갖추기가 쉽지 않은데, 그의 춤은 모든 것을 갖추었다. ‘12차농악북춤’의 ‘12차’는 ‘차(次)’ 또는 ‘채’라는 농악을 구성하는 12거리를 일컫는다.

우진수는 북 잽이 복장인 부포 달린 상모를 제대로 갖추고 진주삼천포 농악의 빠르고 강한 맛이 충분히 녹아든 춤을 추었다.

한수문이 춘 ‘도살풀이춤’은 경기도당굿의 도살풀이를 김숙자가 양식화한 춤으로 이매방류 살풀이춤에 익숙한 관객은 다소 낯설었을 것이다. 한수문은 어정거리면서도 진중한 춤사위로 관객이 도살풀이춤에 한 걸음 다가서게 했다.

이강용의 ‘문둥 북춤’은 춤의 형식 너머를 넌지시 가리키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그의 춤을 보면 딴 생각을 하게 된다. 눈은 춤을 보고 있어도 가슴은 탈을 쓰고 손발을 파르르 떠는 춤꾼의 심성에 닿아있으니 말이다.

홍우송의 ‘애련’은 그가 천착하고 있는 애잔함과 비련을 여러 각도로 보여준다. 전통춤 재창작에 일가를 이룬 그의 가치가 빛나는 춤이다.

여유와 신명이 녹아든 강동옥의 ‘양반춤’을 보고 있자니 그가 제대로 한량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저 없이 배기며 노는 도포 자락이 삶을 그늘지게 하는 애(哀)와 한(恨)을 날려 버린다.

춤에 등급을 매긴다면 최병재의 ‘승무’는 최상급이다. 글이나 말로 덧대는 것이 하찮을 만큼 춤의 충격이 관객의 몸과 감성을 번개처럼 때렸고, 전율은 한참을 머물렀다. 승무를 보고 이처럼 감동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남기성의 춤을 의도적으로 공연 마지막에 놓은 것이라면 그 안목을 칭찬하고, 의도하지 않았다면 행운의 선물이다. 정승천의 춤은 제외하고 무대에 오른 7개의 춤은 정해진 형식이 강하다. 남기성은 형식으로 맺은 7개 매듭을 덧보고, 덧배기면서 풀어내어 민속춤의 세련된 야성미를 보여주었다. 저런 신명이면 나도 춤추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춤. 한껏 추다가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는 덤덤하고 근사한 우리 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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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은 대부분 질문 없이 형태로만 계승되었다. 형식이 춤과 춤꾼을 억압한다는 뜻이다. ‘춤남’은 오랜 시간 춤추며 춤을 위계화하는 전제를 떨쳐 낸 춤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춤추는 남자들’은 전통춤을 자기화한 남자들이다. ‘전통·원형’, ‘남자 춤·여자 춤’ 이전에 ‘춤’이 있고 ‘보유자·이수자’ 이전에 ‘예술가·춤꾼’이다. 더 무엇이겠는가.

춤 비평가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1210.2201900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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