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3> 춤꾼 허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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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738회 작성일 19-02-12 12:34본문
혜성처럼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는가 싶더니 새로운 빛을 온몸에 휘감고 다시 등장한 춤꾼 허경미. 부산 남구 감만창의문화촌에 위치한 부산문화재단 입주작가 사무실에서 그녀와 만났다.
■인도에서 춤의 이유를 묻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내로라하는 무용학도들을 제치고 부산대 무용학과에 수석 입학했다. 수석 입학생답게 모범적으로 무대 춤을 수학하기보다 마당 춤을 배우고, 여름 농활 같은 대학생 봉사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런데도 재학 중 전국신인 무용대회에서 특상을 받았으며, 졸업 후에는 부산시립무용단에 입단해 10년간 활동했다.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예술적 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져가던 무렵,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인도로 훌쩍 떠났다. 귀국 후에는 ‘외外치다’로 부산무용제 대상과 전국무용제 은상을 거머쥐었고, 2016년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박봉수와 협업으로 살풀이를 재해석한 창작 춤 ‘신곡(身哭)’을 런던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연극은 대사를 통해서, 음악은 악보를 통해서 표현하잖아요. 춤은 오로지 내 몸을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데, 춤을 늦게 시작해서 기능적으로 많이 부족했고, 학습능력도 떨어지는 편이었어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고수의 자평답지 않다. 하지만 움직임을 배우고 연마하는 재미를 늦게 깨쳤기에 오히려 생명력이 긴 것 같다는 말에는 쉽게 수긍이 갔다. 춤 자체에 깊은 회의를 품고 길을 떠나야 했던 까닭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32살, 인도로 갈 때는 그토록 좋아하던 춤을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예쁘더라”는 칭찬이 싫었고 움직이는 인형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행복하지 않았다. 춤이 아닌 삶의 근원적인 답을 구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인도 사람들이 매일 행하는 ‘뿌자’ 의식에 작은 꽃을 바치는 모습을 보면서 저 꽃은 그들이 신께 바칠 수 있는 가장 좋고 귀한 것을 상징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제게는 그게 바로 춤이었죠.”
■‘레드스텝’부터 ‘감만 기억’까지
귀국 후 붉은 꽃을 상징하는 이름을 가진 ‘허경미무용단 레드스텝’을 만들었다. 함께 작업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동료가 좋았고, 후배들에게도 작은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8년 정도 레드스텝과 활동하다가 3년 전 ‘허경미무용단 무무’를 꾸렸다. “‘춤추다(舞)’라는 뜻과 ‘없다(無)’라는 뜻을 담았어요. 춤은 움직임이니까 이내 사라져버리죠. 사라지니까 바로 그 순간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의 춤 인생이 짧게 뇌리를 스쳤다. 무엇인가 이루고 가졌을 때 만족하고 멈춘 적이 있었던가. 마치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고 가지게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런 것들은 금세 사라져 없어진다는 진리를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언제나 다음 걸음을 재촉했다. 이즈음에는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부산문화재단 입주 작가가 된 지 2년째입니다. 사무실이 있으니 좋고요, 다양한 분야의 작가와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제가 깃들고 있는 이 지역과 지역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4일, 남구 감만동 빈집과 골목을 누비며 거리 공연을 했다. 진홍 스튜디오(감독 홍석진)와 협업했던 이 공연은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로 재창작돼 같은 달 18일 동항교회 인근 공터에서 펼쳐졌으며, 지난달 14일에는 주민 요청으로 감만창의문화촌 사랑방에서 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이 마을이 곧 사라진다고 해요. 감만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마을이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데, 그곳에 깃든 삶의 기억들도 모두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인문지리학자 이 푸 투안(Yi-Fu-Tuan)은 저서 ‘토포필리아’에서 환경을 ‘깊은 정과 사랑의 대상, 그리고 기쁨과 확실성의 원천’이라 하지 않았던가. 장소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예술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은 그의 춤 철학을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감만 기억’은 사라지는 마을을 아카이빙한 예술 프로젝트다. 그를 비롯한 4명의 무용수와 6명의 주민이 함께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빈집과 창문, 담벼락을 배경으로 몸짓을 펼치고, 삶의 기억과 정든 터전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을 육성으로 전달한다. 참여자들은 3개월가량 현장에 머물며 장소에 깃든 삶의 내력과 온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 느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담았다. 안무의 가이드라인이 있었지만 세세한 동작은 장소와 어우러지도록 자율성을 주었다. 그리하여 빨래를 털어 널고 마당에 꽃을 심는 일상의 동작들과도 괴리되지 않았다. 춤추는 이, 구경하는 이, 기록하는 이들이 모두 함께 마을 곳곳을 누빈 이 공연은 장소의 기억만큼이나 깊고 애틋하게 각인되었다.
■자신만의 빛을 내다
미디어를 활용한 다원 영역 역시 그의 새로운 활동 장이다. 춤과 첨단 영상기술이 만나 아날로그적 움직임을 디지털화하는 인터랙티브 프로그래밍을 기반으로 한다. 새롭고 참신한 시도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사뭇 달랐다. “미디어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잖아요. 저 역시 몸과 춤의 고유성이 스펙터클에 잡아먹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도 이런 작업을 시도하는 이유는 창작자로서 경험과 도전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몸을 쓰는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쓰지 않던 방식으로 몸을 쓰다 보면, 움직임의 새로운 질감을 찾을 수 있지요.”
대학 시절 전공과는 결이 다른 마당 춤을 추었던 허경미다. 홀연히 떠난 인도에서 요가와 전통춤 까탁, 악기 타블라를 배웠다. 다양한 움직임의 서로 다른 에너지들을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이제 그들을 쌓고 엮어 자신만의 독특한 빛으로 찬란히 빚어내고 있다. 누구보다 치열한 고민과 도전의 세월을 보내고 비로소 자신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고 있는 오늘의 그를 어떤 말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무대에서 또 거리에서, 변함없는 시선과 몸짓으로 오늘도 현장을 지키고 있는 춤꾼 허경미의 내일은 그래서 오히려 견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