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25> 리뷰 : 춤으로 기억하는 역사 -프로젝트 광어 창작춤 ‘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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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722회 작성일 19-10-15 13:18본문
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25> 리뷰 : 춤으로 기억하는 역사 -프로젝트 광어 창작춤 ‘필 때까지’
부마항쟁 담아낸 춤 … 몸짓·감정서 ‘그날’의 결기 느껴져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14 18:38:25
- | 본지 19면
- 10명의 군무로 ‘10월16일’ 표현
- 치밀한 안무와 춤꾼 열연 인상적
- 춤 장점·역사 의미 동시에 살려
- 예산 탓 열악한 공연 환경 아쉬워
1979년 10월 16일 ‘부마 민주항쟁’의 실마리가 된 부산대생의 시위가 시작된 지 올해로 40주년이 됐다. 정부는 올해부터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고, 부산과 마산에서 ‘부마 민주항쟁(부마항쟁) 4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문화·학술행사가 이어진다. 지난달 28, 29일 부산시민공원에서 부마항쟁 40주년 기념 문화행사의 하나로 야외무대와 남문에서 흰옷을 차려입은 10명의 군무가 펼쳐졌다. 이 작품은 ‘프로젝트 광어’가 부마항쟁을 주제로 만든 창작 춤 ‘필 때까지’(안무 김평수)다. 행사 첫날 퍼붓는 빗속에서의 춤은 깊은 인상을 남겼고, 다음 날 공원 출입구에서 펼친 춤도 시민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했다.
지난달 29일 부산시민공원에서 열린 ‘프로젝트 광어’의 창작 춤 ‘필 때까지’ 공연 모습. 사진가 이인우 제공 |
예술로 역사의 중요한 사건을 기억한 예는 많다. 문학·영화·미술에서는 이미 많은 작품이 있고, 음악도 역사적 사건을 작품 주제로 삼은 지 오래다. 가까운 예를 들면, 1981년 윤이상이 ‘5·18 광주 민주항쟁’ 희생자를 위해 만든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가 있다. 이에 비해 춤으로 역사를 담은 작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춤은 매개체 없이 직접 표현 가능한 ‘몸’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가졌지만, 춤의 장점을 살리면서 역사성을 담아낸 이렇다 할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제를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에 춤 외적 요소에 지나치게 의지한 결과 춤이 묻히는 경우가 많고, 창작 계기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작품은 주로 외부 의뢰가 창작의 계기인 경우가 많아서 의뢰한 쪽의 기대를 무시하고 예술성을 밀고 나가기 힘들다. 이처럼 역사적 의미를 살리면서 춤을 유지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부마항쟁을 공연예술로 담아내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 민주공원 개관 직후인 2000년부터 10월이면 부산의 예술인들이 모여 총체극 형식의 ‘부마 민주항쟁 상황재현 굿’을 공연했고, 규모는 줄었지만 올해도 기념식을 여는 꼭지에서 선보인다. ‘상황재현 굿’이 말 그대로 당시 상황을 극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춤과 음악을 더 했다면, ‘필 때까지’는 상황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당시의 일상과 혼란, 혼란을 딛고 폭압에 저항하는 결기 그리고 암울한 상황에도 미래를 낙관하는 민중의 건강성까지 춤으로 담았다. 그렇다고 20분 남짓의 이 작품이 ‘상황재현 굿’의 의미와 예술성을 능가하거나 필적할 만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작품은 부마항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춤을 포기하지 않고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작품 전체 구성과 흐름의 강약 조절이 좋고, 농악 진법과 춤사위를 적절하게 섞어 춤의 호흡과 감정으로 주제를 드러낸 점은 안무의 치밀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몸을 아끼지 않는 춤꾼의 열연은 주제를 미처 알지 못하는 관객에게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쉬운 점은 예산이 모자라 라이브 반주를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행사에 오르는 좋은 창작품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못하면 예술가의 부하가 커지고, 작품의 가치까지 깎일 수 있다는 사실을 주최 측은 새겨야 한다.
춤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에 정석은 없지만 ‘필 때까지’는 적어도 한 가지 전형을 보여준다. 지난 12일 저녁 남포동에 마련한 ‘부마 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 무대에 ‘필 때까지’가 올랐고, 오는 12월 다른 무대에도 오른다고 한다. 부마항쟁을 지금의 춤으로 담아낸 모습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춤 비평가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1015.22019002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