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 nation 쁘리야 김(PRIYA KIM) 31회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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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산민예총 조회464회 작성일 24-04-25 11:14본문
image + nation 쁘리야 김(PRIYA KIM) 31회 개인전
일시 : 2024년 5월 9일 ~29일 (오후1시~6시, 월요일 휴관)
장소 : 갤러리 제2작업실 (부산시 동구 증산동로 17, 2층)
오프닝 : 2024년 5월 10일 금요일 오후 4시
문의 : 010-2595 -3286
입장료 : 무료
이 작품들은 <중층적 재현-산복도로, 그 신화적 공간(2012)>에 이은 다중노출 촬영 시리즈로 2014년 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유럽갔을 때 촬영한 것들이다. 이미지에 천착해 작업을 해오면서 그동안 내 이미지는 왜 더 이미지적이지 못한가가 늘 고민이었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을 비롯해 미술관을 견학하면서 이 화두를 풀고 싶었다. 유럽과 내가 맺는 연(緣)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가 세상이 변화무쌍한데 정지된 단사진만 찍는 나를 발견했다. 내게 이미지는 늘 변화하는 무엇인데 나는 한 장의 사진에 대상을 찰나적으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정지된 것은 대상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이미지 안에서였다. 이미지는 빛과 시간, 기타 조건에 의해 항상 새롭고 다양하게 변하며 다가오는데 내 사진은 왜 그것의 정지된 단면만 보여주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대상의 변화를 촬영해 자유분방하게 만들어 새롭게 놓아주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 실체와 달리 재구성된 나만의 리얼리즘을 만들고 싶었다. 나에게 사진은 한 마디로 ‘실체를 떠나보내는 작업’이며 그때 새로운 것들을 내 프레임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길고 강한 식민제국주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많다. 1600년에 설립된 동인도회사로 시작된 영국의 인도식민통치는 1947년 8월 15일 인도와 파키스탄을 끝내 갈라놓고서야 물러갔다. 인도는 저항과 운동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다. 우리나라는 근 35년의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의 2차세계대전 패망으로 광복이 주어졌다. 식민지 역사를 몸에 새긴 내가 더 긴 식민지 역사를 가진 인도에서 6년간 생활했다. 그래서인지 유럽 레지던시 기간 동안 유럽은 낭만적이고 안락한 곳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비틀즈 멤버가 기타를 샀던 악기점은 유명한 관광 코스가 되고 그들이 걸었던 애비 로드(Abbey Road)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 명성에 비해 평범하고 초라해 보였다. 사소한 이야기가 신화(허위)가 되는 나라, 그것으로 정통성을 만들어 가는 나라, 내 눈에는 유럽이 그렇게 비쳤다. 나는 제 3세계의 피와 땀 그리고 많은 전리품으로 채워진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잔재들을 보고 싶었다.
열강 제국의 신화를 만드는 매체로 사진은 언제나 선두에 있었다. 이미지는 의미를 강화시키고 정당화시키는 재생산적 도구이다. 나는 내가 만든 이미지로 단단하고 견고한 유럽의 안정을 뒤흔들고 싶었다. 사진은 내게 예술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 나에게 유럽은 고정되고 평화로운 이미지가 아니라 와해되고 분해할 대상이었다. 나는 유럽에 내재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이미지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유럽을 촬영했다. 평생 화두로 삼고 있는 빛의 두께, 빛의 무게에 대한 문제도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고민도 이미지를 분해하면서 점점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촬영하면서 사진은 점점 나의 이데올로기와 내가 만드는 리얼리즘이 혼재하는 공간이 되어갔다. 나는 내가 만든 시각으로만 유럽을 보고 있었다. 결과물인 이미지는 나로 인해 구축되는 것이지 대상 스스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유럽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후에도 많은 이미지를 계속 재생산해 갔다. 마찬가지로 나는 유럽을 이미지의 나라, 신화의 나라로 스스로 규정하면서 유럽에 대한 또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다. 그 모순으로 돌아가 유럽은 신화의 나라라는 내 머릿속 이미지를 깨부수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image+nation>은 이미지가 만든 제국을 의미하면서도 내가 만들어 낸 이미지가 상상(imagination) 속에서 다시 신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내 시각으로 만든 유럽의 이미지를 굳건히 믿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가진 모순을 발견하는 순간, 거기에서 내 작업은 출발했다. 새롭게 구성된 이미지들은 나에게 미적인 대상으로 다가왔다 멀어졌다. 그 진폭과 진동에 서서 이미지 제국을 만드는 나를 발견하며 모순 속에서 불안하게 걸었다. 타국에서 나는 나만의 언어로 발화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