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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가진 힘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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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5-02 11:34 조회2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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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5.03 칼럼

노래가 가진 힘

김민지

 

 

재작년 겨울, 아마 2월쯤이었던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쩌다보니 다른 지방에 가게 되었다. 그곳의 추위는 부산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고민할 여유도 없이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오전 시간대임에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택시 안에서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마침 바로 전날이 그래미 시상식이었나보다. 라디오에서 수상자들의 노래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었다

 

정오에 가까워지던 시각. 건조한 목소리를 가진 라디오 진행자는 '단연코 올해는 아델의 해가 아니었나 싶다'는 말로 영국 가수 아델의 그래미 수상을 소개했다. 타이틀은 다들 익숙 하실테니 다른 노래를 들어보자며 틀어준 곡이 'Million years ago' 였다

그날 처음 나는 아델의 그 곡을 들었다. 아델이 유명세를 얻기 전, 자신의 고향과 가족들을 비롯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내용의 곡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기에 마치 수 백 만 년 전의 일처럼 느껴지는 일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을 회상하며 부르는 아델의 목소리는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낯선 곳의 풍경 위에 얹혀져 순간순간의 이미지들로 기억에 남았다. 후회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모든 지나간 시간들을 붙잡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더 절박하게 매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4분이 채 되지 않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어제 있었던 일, 그저께 있었던 일, 그리고 먼 과거의 일까지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생각했다

 

지금도 Million years ago를 들을 때면 그날, 그때의 기분이 되곤 한다. 노래를 듣는 348초 동안 나는 여전히 재작년 겨울에 머물러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노래들이 하나씩은 있지 않나. 여행지에서 우연하게 들었던 곡에 여행 시간들을 꾹꾹 넣어둔다던가 어떤 곡을 들으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던가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노래가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몇 년 동안 불려지지 않은 노래가 있었다. 그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 국가는 수 년 동안 그 노래의 제창을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 노래는 '모두가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2017518, 노래는 다시 모두에게 불려졌다. 그날의 역사적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불려져 나왔다

 

계속 불려 진다는 것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4분 정도의 시간동안 온전히 그 기억에 몰두한다. 가사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사건은, 피해자는, 희생자는 그렇게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매일 불려지고 들려진다.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하는 ‘4월의 춤’, 세월호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그리는 아직 있다두 곡은 모두 가수 루시드 폴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다. ‘4월의 춤은 올해 추도식 행사의 일환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려졌다. 이 노래를 알고 있었던 사람도, 몰랐던 사람도 이 노래가 연주되는 동안 가사를 따라가며 역사 속 희생자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노래는 그런 힘이 있다. 내 입술과 그 주변의 근육을 움직여 소리내게 하고 그것을 듣게 한다. 머릿속에서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던 것들이 현재에 호명될 때, 그것은 분명해진다.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며 아직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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