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민예총은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부산의 예술인 단체입니다.

글빨

글빨

  • HOME
  • 글빨
  • 글빨

사과3_박창용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02 14:55 조회20회 댓글0건

본문

글빨 17.11.02 짧은소설

사과 3

박창용

 

 

1/다분히 피곤한 우리의 세계, 그러한 세계를 보는 우리, 우리의 온전하였던 중앙, 이미 깊던 동굴일 수도, 광야의 한 복판이거나, 밀림에서 가장 굳건한 나무의 줄기, 유인원이 범접할 수 없는 사막과 동토든지. , 이러구러 해도, 어느 순간 맞닥뜨리고 만, 어떤 과실을 맺을 수 있는 한 그루 나무, 최후의 양식이자 맛이자 정치, 그렇게 맺히는 것들, 그 영역의 종족, 우리.열매를 먹은 우리는 먹힌 것들을 닮게 마련, 이를 테면 태초의 무엇들, 말 이전에 말로 쓰이던 것들, 표정, 체취, 몸부림, 몸짓, 그럼에도 대체 가능하여 마치 엄습하는 잉걸불의 열기처럼 의미가 그저 바로 가닿을 수 있게 되었을 따름. 따라서 당시의 것들, 무엇 하나 죽어있지 않던 시절 외부의 모든 관찰 가능한 대상들, 그러니까, 암석의 비명, 광대버섯의 낮은 울음, 검게 기어가는 구름에 닿기 위해 매년 손톱두께로 자라는 산호, 푸른 모래, 도토리, 아니, 썩은 도토리, 아니, 기어이 싹을 틔워 상수리나무 숲을 일궈낼 썩은 도토리, 좁은 조약돌을 원망하는 말미잘, 무너지는 맘모스의 어깨들,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바다거북,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언니의 아들의 아내의 동생의 움집의 장인의 딸의 아들의 친구의 아버지의 형의 연인의 딸의 서투른 고백, 자정마다 다리가 하나씩 늘어나는한때 거미였던 것’, 지루한 산딸기, 귀뚜라미의 구토, 채식주의 암컷 모기, 검은 모래사장에서 벌거벗은 집게, 두 계절이나 굶은 꿀벌, 과묵한 비둘기, 산맥의 가느다란 모가지, 훗날 충실한 품종이 될 병약한 늑대의 무리, 군무를 추는 플라타너스 이파리, 천 리 길을 느긋하게 기어온 울긋불긋하고 못생긴 돌멩이 등이 상()으로서 그저 그대로 서로에게 옮아갈 수 있던 시절, 아직 말이 등장하지 않은, 사실 말이 필요하지 않던 시절에 대하여. 그러한 시절을 가능케 하던 무엇에 대하여. 2/그것이 사과였는지 무화과였는지 포도였는지 복숭아였는지 알 수 없거니와 심지어 열매도 과일도 아니었을 수도 있으나 어차피 말 이후에 말하여지는 것들조차 모든 ''들 사이에서 어긋나는 판에 말 이전에 가리켜진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두고 말로써 규정하려드는 짓은 차치하는 쪽이 현명하므로 일단 편의상 그것을 사과라 해둘 터. 3/그러나 망각의 작업은 언제나 순조로울 따름. 사과를 잊고 잊고 잊고 또 잊은 끝에 등장하는 말씀들. 값비싼 기름덩어리, 황혼의 몰락, 얼굴 없는 살육을 피해 승선한 사람을 품은 채 침몰하는 배들, 무표정한 가면의 행렬, 석양의 광야에 널브러진 오롯한 아버지와 아버지를 추종하는 모든 이교도의 전쟁, 오만과 왜곡의 확신으로 금기가 되어가는 사랑들, 썩지 않는 햄버거, 죽은 땀으로 갉아 새긴 숫자가 굴리는 마천루, 꽃으로 꾸민 케이지의 주인이 경멸하는 거리의 선지자들위임과 수용을 숭배하는 어버이들, 색다른 인간을 전시하는 동물원, 곤두박질치는 고철, 미지근한 바다의 정복 사업, 매 순간 멸망 당하는 내 몸의 아종(亞種), 기름진 비스켓으로 인기가 좋은 모래 바위 무리, 진공을 떠도는 기지들의 충돌, 포클레인의 안식, 불멸의 나선, 지극히 사적인 자연사(自然死)와 자연사(自然史), 모든 딸들을 위한다는 선언으로 쏟아놓는 모든 딸들을 향한 으름장, 다름과 틀림의 오용, 역류하는 어제들, 착취할 줄 아는 이들이 지배하는 이 둥근 툰드라 어딘가에서 겨우 춤추는 불꽃,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좋고 싫음', 어차피 내 것으로 용납할 필요 수 없는 타인의 무엇, 이것은 말의 필연, 그러나, 말은 결국 잠시 이용되는 것일 뿐, 다시 그러나, 그 잠시가 어느 세월을 일컫는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으므로 아직은 말이 만드는 어긋난 말로 마주치고 망설이고 미끄러지고 오르고 껴안다가 잊고 떠올릴 따름. 4/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우리가 먹었던 것으로 돌아갈지니.

 

 

 

- 인류가 활자를 이용하여 자행해온 모든 시도와 모험을 답습하려는 목동 지망생. 서울에서 개인으로 생존해내기 위해 안전하면서도 전위적인 음주 행각을 연구하여 실천하고자 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