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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미술대전>과 <퇴폐미술>전(1937), 그리고 <로테이션>(2011)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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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9-08 13:20 조회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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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9.08 미술비평

<독일미술대전><퇴폐미술>(1937), 그리고 <로테이션>(2011)

김민지 

 

 

하비에르 테레스의 <로테이션>(프로메테우스와 자웅동체)

하비에르 테레스의 <로테이션>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도 형태가 전혀 다른 두 개의 조각을 비추는데, 두 편의 35mm시퀀스가 위아래로 조각을 관찰하면서 나란히 보여 진다. 왼쪽 화면에서는 쭉 뻗은 손에 횃불을 들고 있는 다소 고전적인 모습의 남자누드 입상이, 오른쪽 화면에서는 읽어내기 어려운 표현적인 요소를 지닌 토템처럼 생긴 상이 자리 잡고 있다.

 

횃불을 든 남성 누드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비율적으로 잘 표현된 신체를 통해 균형적 구성을 추구하는 형식을 고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은 아리안족의 영웅인 <프로메테우스> 조각으로 히틀러가 좋아한 조각가였던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1937년에 만든 것이다.

 

반면 옆에 위치한 토템 형상의 인물 조각은 고대의 기괴한 상과 콜럼버스 이전의 미술, 그로부터 비롯되는 원시성 등을 떠올리게 한다. 미학적인 갈색조의 색채만이 파편으로 보일지도 모를 형체를 통합하고 있다. 카를 겐젤(Karl Genzel)<자웅동체>20세기 초 서양미술이 약탈하고 변형시켰던 이른바 원시적인 형식과 동일한 레퍼토리를 이용한다.

 

필름에서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아르노 브레커의 <프로메테우스>는 실제의 인물 크기보다 더 큰 청동상이다. <프로메테우스>1937년 뮌헨에서 열린 <독일미술대전>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카를 겐젤의 <자웅동체> 역시 1937년 여름 <퇴폐미술전>에서 전시된 작은 목조상이다. <독일미술대전> 전시장과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하루 차이 간격으로 열린 <퇴폐미술>전은, 현대미술을 본질적으로 퇴행적인 프로젝트로 비난하려는 나치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었다. 나치의 주장을 시각화하기 위해 나치 정권의 큐레이터들은 주요한 아방가르드 미술을 정신병자들의 작업들과 나란히 놓아 형식적 병치를 의도했다. 카를 겐젤은 이러한 정신질환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하비에르 테레스는 관람의 상황, 더 정확하게는 1937년 관객들에게 주어졌던 비교해서 보기라는 상황을 <로테이션>을 통해 21세기에 재구성하고 있다.

 

나치시대의 미술사

나치시대의 미술사 수업은 주로 독일중세로부터 바로크시기에 집중되었고, 키워드는 민족, 인종, 국가, 풍경, 기후, 대지로 요약된다. 특히 뒤러와 홀바인은 독일의 영웅적인 인물로 숭상되었다. 19세기 화가로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필립 오토 룬게, 아놀드 뵈클린, 아돌프 멘첼 등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프리드리히는 조국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전형적인 독일작가로 커다란 호평을 얻는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그는 나치가 강조한 피와 대지, 민족과 고향의 개념을 낭만적인 풍경화에 녹여냈다. 나치가 선호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고향과 동북부 해안을 여행하며 독일의 신화와 연결되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등장하는 풍경화를 즐겨 그렸으며, 프랑스의 독일 점령 후에 완성된 그림들은 애국심의 좌절된 감정을 엿보게 한다.

 

나치시대의 현대미술

나치시대의 미술사는 현대미술에 관한 언급조차 회피하는데, 이것은 나치의 현대미술 억압정책과 관련이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나치는 19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프랑스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독일 표현주의, 다다이즘을 퇴폐미술로 간주했으며, 특히 다리파 화가들의 인물화에서 발견되는 왜곡된 형태와 변형은 유대인의 퇴화적인 속성으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은 볼셰비즘 문화와 동일시하였다. 결국 현대미술은 나치의 이념을 선전하는 도구로 철저히 이용되었고, 이것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독일미술대전><퇴폐미술전>

나치 집권 이후 이루어진 독일박물관연합의 연례회의를 통해 나치는 가장 먼저 박물관 인력을 통제했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국가의 우선권을 인정하며 나치의 새로운 문화정책에 적극 협조할 것을 표명했다. 베를린 회화 관장이었던 유대인 출신의 막스 프리드랜더는 1933년 즉각 해임되는데, 이유는 현대미술을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나치시대의 독일 박물관과 미술관은 나치의 취향에 부합하는 미술, 주로 19세기 전반까지의 독일 작품을 소장하였고 20세기 이후의 작품은 절대로 구입하지 않았다.

 

현대미술에 대한 나치의 탄압은 1937년 뮌헨에서 열린 <퇴폐미술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다. 나치는 독일 내 28개 도시의 32개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700여점의 그림과 조각, 판화 등을 몰수하였다. 이때 가장 큰 표적은 표현주의 작품들이었다. 몰수된 작품들은 3주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719일에 뮌헨 고고학미술관에서 <퇴폐미술전>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하루 전인 718일 뮌헨 독일미술의 전당에서 <독일미술대전>이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히틀러의 축사와 나치가 적극 후원한 독일미술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과도 같은 독일미술대전은 아리안종의 뛰어난 육체미를 과시하는 남성누드와 모성의 힘을 강조한 여성누드의 인물화, 조각상, 역사화, 풍경화 등으로 기획되었다. <독일미술대전>이 넓고 밝은 전시공간에서 이루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퇴폐미술전>은 비좁은 공간에 표현주의 작품, 다리파, 청기사, 다다의 작품 650여점이 여백 없이 무질서한 상태로 전시되었다.

 

나치의 의도는 두 전시의 비교를 통해 건전한 독일미술과 퇴폐적인 현대미술, 즉 건강한 인물과 변형된 인물의 상호비교를 통해 아리안 혈통의 우월성과 열등한 유대인의 모습을 가시화하는데 있었다. <퇴폐미술전>의 기획이라는 명명으로 몰수당한 현대미술 작품들은 대략 2만 여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퇴폐미술전>세상에 퍼진 볼셰비즘의 위기를 인식하기 위해 민중의 눈을 뜨게 하는데그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송혜영, 나치시대의 미술사와 박물관,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Vol.29, 2008, 서양미술사학회,pp.343-372

김세나, 퇴폐미술전(Entartete Kunst)'의 성격과 미술사적 의의에 관한 연구 : 독일 나치(Nazi) 시대를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학위논문, 2017

 

웹사이트

부산비엔날레 www.busanbiennale.org

 

 

 

-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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