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치열한 자기 고백_정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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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201회 작성일 21-05-31 13:48본문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치열한 자기 고백
정희연
나의 엄마가 하는 말이 있다(간혹 여기에 동생도 동조한다). 내가 내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가 아니라 이모나 고모 같다고. 그럼 나는 질문을 하는 수밖에. 도대체 엄마 같다는 건 무엇이고, 이모와 고모 같다는 건 뭘까? 여기서 ‘엄마’와 ‘이모’, ‘고모’스럽다는 건 특정한 개인―가령 필자의 엄마나 3촌 방계혈족으로서 이모나 고모―을 빗댄 속성은 아닐 테다. 이 물음을 발언한 당사자들에게 캐물으면 되돌아올 대답: ① ‘그냥 그렇다는 거지 왜 또 따지고……’, ② ‘그걸 묻지 말고 네가 한 번 생각해봐라.’
그래, 보통의 엄마 같지 않다는 뉘앙스로 이해하고 넘어가자. 그러면 나에게 묻는다. ‘보통의 엄마’란 뭘까? 나는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탄생 이래 누구도 축자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분리될 수 없는 엄마라는 기표의 관습적 형상이 가진 속성에 대해 자문한다. 하지만 자답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엄마! 엄마!’(꼭 두 번 이상 부른다)를 외치며 달려오는 아이의 발소리와 함께.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의 <당신 엄마 맞아?: 웃기는 연극>(송섬별 옮김, 움직씨, 2019)(이하 <당신>으로 표기)을 펼치게 된 사연은 위와 같다. 다만 직관적이고 도발적인 그 질문, ‘당신 엄마 맞아?’의 잔향이 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맞다1’에서도 ‘어떤 대상의 내용, 정체 따위의 무엇임에 틀림이 없다’에 해당할 ‘맞음’, 즉 ‘무엇임에 틀림이 없다’에 관해 묻고 있는 이 제목이 ‘엄마’에 대해 자문하던 나에게도 향해 있었다.
물론, 나와 벡델이 방점을 두는 엄마는 다르다. 벡델은 <당신>에서 자신의 엄마를 향해 이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엄마로부터 받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에서부터 “회고록을 쓰는 지금까지도”(16) “이야기가 현재 진행 중”인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를 굽이굽이 펼쳐가며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결핍과 간극과 공백”(294)들을 마주한다. 따뜻하지만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엄마, 그리고 냉철하고 비판적인 지금의 엄마까지 벡델은 자신과 엄마와의 대화와 사건을 소상히 그려 넣고 있다.
<당신>에서 벡델은 엄마를 이해하려 회고한다. 이 과정에서 목도하는 건 벡델이 자신을 회고하며 이해한다는 것이다. 엄마에 대해 술회하며 자신을 술회한다. 엄마를 이해하려는 회고로서의 시도가 곧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으로서의 시도다. 작품의 서사에서 다면적으로 전개되고 참조되는 벡델의 꿈, 심리 치료사와의 상담 과정,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글들이나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과 앨리스 밀러(Alice Miller) (아동)심리?정신 분석 텍스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벡델은 자신과 엄마와의 관계를 타인이나 텍스트를 경유해 알아가는데, 이 요소들을 흥미롭게 병치하는 방식으로 기술한다. 가령, 위니캇의 대상관계이론을 설명하는 다음 장면으로 정신 분석가와 벡델의 상담이 이어지고, 곧이어 과거 영국의 지하철 노선도를 그리며 울프의 자취를 쫓다가 같은 시기의 젊은 위니캇을 상상하는가 하면, 다시 회고록을 쓰는 벡델로 돌아온다(28-33). 이렇듯 벡델이 자신과 울프, 위니캇을 텍스트 내 같은 시공간으로 재배치할 때, <당신>에 쌓여있는 이론과 텍스트들의 개입은 지루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아진다. 이는 백델이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과 엄마의 관계성을 치열하게 이해하려는 모든 과정이었던 까닭에서다.
그간 벡델은 자신과 엄마와의 관계성 속 공백이나 결핍을 다른 존재나 심리 치료사들을 통해 찾으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니캇이 자신의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한다거나, 조슬린의 집을 보며 불안한 감정을 다스리거나 그에게 안아달라고 하는 둥. 하지만 작품의 끝에 다다를수록 그는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내가 엄마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이 다만 엄마에게 있지 않을 뿐이었다. 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었다”(234)는 것을. 그리고 “엄마는 당신이 줄 수 있는 걸 내게 줬다”(235)는 것을.
울프의 “어떤 것도 다만 하나가 아니기에”라는 <당신>의 제사(題辭)가 묵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엄마를 이해하려는 과정이 곧 벡델 자신이 가진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이었고,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실은 나를 이해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는 ‘어떤 것도 다만 하나가’ 아닌 과정이기에.
내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것이 있다. 결핍과 간극과 공백이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어머니는 내게 다른 것을 주셨다. 아마도, 훨씬 더 값진 것. 그녀는 내게 출구를 주었다. (294-95)
<당신>이라는 회고록은 엄마, 벡델, 그리고 엄마와 벡델이라는 켜켜이 두터운 지층들을 펼쳐놓음으로써 다시 열렸다. 벡델은 엄마보다 자신과 화해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는 내밀하고도 담담한 자기 고백을 완수하며 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다시금 고백한다. “이미 알고 있어서 굳이 말로 내뱉을 필요가 없는”(292) 그건, 서로의 방식은 달랐을지언정 변하지 않을 “사랑해요!”다.
덧붙이는 말. 1) <당신>은 벡델의 <펀 홈: 가족 희비극>(이현 옮김, 움직씨, 2018)에 이어 출간되었다. <펀 홈: 가족 희비극>을 먼저 읽고 <당신>을 읽으면 벡델의 가족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2) 나는 <당신>을 읽을 때, 종이책과 전자책을 함께 보았다. 원문 인용이나 설명의 각주의 글자 크기가 작다. 간혹 검은 바탕에 적힌 자주색 각주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니, 꼼꼼하게 확인하며 읽을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