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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와 살기10] 다시 시작하는 나비_이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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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10 16:49 조회2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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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와 살기10]

다시 시작하는 나비

 이기록

 

 

  세상에서 나는 헤매며 시를 쓰고, 그리고 당신을 꿈꿉니다. 나는 조금씩만 움직입니다. 어느 날 당신 영혼을 나꿔채어 이 얼어붙은 땅을 떠나게 될 때까지, 시방 내가 택하는 형식을 찬찬히 훑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려주실 테지요, 내 어눌한 말의 변신을? 그것을 믿습니다.

- 김정란, <나의 > 중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빨리 끝나길 기다리던 코로나는 곧 해가 바뀔 텐데도 전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세웠던 모든 계획들이 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뒤돌아보는 시간을 찾기 위해 해외여행을 꿈꾸었을 것이고, 또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며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세상을 헤매며 버텨내고 있다고 해야하는 게 맞는 듯하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고 있다. 달력에는 변동없이 12란 숫자가 걸려있으며 그 마지막 숫자도 이제 곧 떨어질 거다. 어제 잡힐지 모르는 짐승을 대하듯 내년을 구체적으로 기약할 수 없지만 내년에는 치료제와 백신이 나올 것이란 희망으로 우리는 무엇인가 꿈꿀 수밖에 없다.

  조금씩만 움직여보자. 친한 소설가의 이야기, 얼마 전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모든 몸의 수치가 너무 올라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약을 처방받고 두 달 정도 아주 부지런히 걸었더니 며칠 전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이 시대에 걷는다는 것도 사치일 수도 있으나 양의 기운을 몸 속에 받으며 비타민을 축적시키고 천천히 풍경을 받아들이는 것들은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최고의 방법일 듯하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집에만 있다 보니 점점 몸이 안 좋아진다. 내년에는 친구를 따라 조금 움직여봐야겠다.

  천천히 훑어보아야 한다. 한동안 반성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코로나를 핑계로 대면서 점점 게을러졌다.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한 일이니 어떤 게든 살아나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앞만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처럼은 아니겠지만 글을 쓰면서 부끄러운 일이다. 그동안 연락하지 않던 친구들이 기억난다. 바쁜 척 살다보니 자주 연락하던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이 뜸해졌다. 젊은 나이에 간 이식을 받은 친구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화를 해 보리라.

  기다려야겠다. 그래도 곧 준비해온 책을 한 권 출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것이다. 당연히 못 이룬 일도 있지만 올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을 마무리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글이란 쓰면 쓸수록 부끄러운 일이면서 스스로의 언어에 더해지는 책임을 다 해야하는 일임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힘든 고비 하나를 드디어 넘었다.

  그것을 믿는다. 책을 내면서 과거의 시간과 만나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듯이,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하여 고민거리가 생겼다. 앞으로 나는 어떤 글을 쓰며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책 원고를 계속 수정하면서 그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시간이 남아있으니 조금 더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사람에 대한 예의,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대한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내년도 버틸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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