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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근본주의0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_정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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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1-27 07:10 조회3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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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근본주의0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정진리

 

*<소설 근본주의>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소설로 풀이하는 편협한 코너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1126. 국내 코로나 일일확진자가 500명을 넘겼다. 3차 대유행의 시작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아주 강렬한 사랑에 빠졌다. 헤어날 수 없으며, 결코 헤어나고 싶지가 않다. 사랑은 내가 돈을 버는 이유, 때로는 굴욕과 모멸을 감수하는 이유, 미래의 시간을 상상하는 이유다.

우리는 장거리 커플이다. 매주 주말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간다. 짧은 시간 서로의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내려온다. 최근에는 비행기 삯이 KTX보다 싸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타고 있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심한 편이다. 저가항공사 비행기 10대가 뜨면 3대는 추락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도 갖고 있다. 하지만 높은 곳의 공포나 코로나의 공포 모두 나를 막지 못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주인공은 싸우려는 상대에게 내가 지금 얼마나 센지 넌 모를 거다, 난 사랑에 빠졌거든, 사랑으로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넌 모를 거다라고 말한다. 내 마음이 꼭 그 꼴이다.

젊음을 과신해 코로나를 무시하는 바가 아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걸릴 사람은 걸린다는, 코로나 운명론이 젊은 층에 퍼져 있다고 한다. 나는 사랑 외의 운명은 믿지 않으며 무엇보다 젊은 층도 아니다. 비행기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 한다. 만나도 어디 나가지 않고 얌전히 집에서 티비를 보거나 음식을 요리해 먹는다. 그럼에도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안다.

잘 알려진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전염병에 대한 소설이다. 주인공 아센바흐는 제법 이룰 것을 이룬 작가로 베네치아로 휴양 온 참이다. 거기서 아센바흐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를 만난다. 그 이후부터 아센바흐의 관심은 오직 이 소년에게만 쏠린다. 물론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한다. 그러기에는 둘의 성별이 갖고 나이 차도 어마어마하다. 관습적인 시선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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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노 비스콘티의 동명 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타지오를 연기한 비요른 안드레센. 누가 반하지 않겠는가? 이성애자인 나도 반할 뻔했다)

 

그런데 베네치아에 시로코 열풍을 타고 콜레라가 퍼진다. 베네치아 당국은 그 사실을 쉬쉬하고 감염된 사람은 일주일 뒤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으로 불어난다. 도시는 병들고 휴양 온 관광객들은 하나둘 떠난다. 아센바흐는 떠날 수 없다. 호텔 지배인이 어째서 떠나지 않냐고 물어도 요지부동이다. 타지오를 두고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점점 빠져나가는 수상도시 베네치아에는 곤돌라만 둥둥 떠다닌다. 곤돌라는 마치 관 같이 생겼는가 하면 그리스신화에서 스틱스 강을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 카론의 나룻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곤돌라는 이탈리아어로 흔들리다라는 뜻인데 이는 아센바흐의 심적 동요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렇듯 베네치아는 죽음의 이미지가 드리운다. 결국 아센바흐는 해변가 벤치에서 타지오를 바라보다 숨을 거둔다. 아센바흐는 아름다움을 한평생 좇은 예술가다.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의 은유 그 자체인 타지오에게 어떻게 투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토마스 만은 동성애자다. 그 사실은 그가 죽고 나서야 세간에 알려졌다고 한다. 토마스 만은 그의 성애적 기질을 숨기려 애썼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 은밀히 고백하고 있을 따름이다. 흔히들 아센바흐를 토마스 만의 분신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토마스 만은 어떤 죽음, 일테면 사회적 죽음을 감수할 정도로 대담하진 못했던 것 같다.

토마스 만은, 그리고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지금 내게 어떤 경고를 보내고 있다. , 죽음의 공포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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