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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8] 불면 또는 요람_박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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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1-12 22:13 조회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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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8]

불면 또는 요람

박창용

 

 

어떤 사람을 가장 부러워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결 같다. , 인품, 외모, 권력 등(이 중 단 한 가지만이라도!)을 충분히 가진 사람이 물론 부럽긴 하지만, 가장 부러운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잠을 잘 자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에 불과한 꿀잠이 어째서 나에게 이토록 버거운, 일생일대의 과제가 되고 말았을까.

 

지금 이 글조차 세 시간에 걸쳐 시도한 숙면에 실패하고 끼적이는 것이다. 창밖이 푸르스름하게 밝았고, 아침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점차 커진다. 익숙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다. 잠을 푹 잤다, 라는 표현에 걸맞게 마지막으로 잠을 잔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잠을 푹 자면 어떤 기분인가?”, “꿀잠이란 무엇인가?” 등 황당한 질문을 가끔 떠올릴 정도다. 아무튼 항상 잠을 제대로 못잔 상태인 셈이다.

 

누이면 눈을 감고 일으키면 눈을 뜨는 인형처럼 눈알 뒤쪽에 어떤 장치 같은 게 생겼는지 잦은 불면에 피로한 눈을 조금만 의식해도 눈꺼풀 안쪽이 당기고 뻐근하다. 잠을 통 못 이루는 날을 연달아 겪으면 미세한 근육통이 전신 순회공연을 감행한다. 하품을 너무 많이 해서 턱 관절 상태도 염려스럽다. 그래서, 제발 잠 좀 제대로 자보자, 결심하여 넉넉한 시간을 두고 잠을 청해도 어김없이 몽롱한 상태로 새벽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이부자리에 언제 누웠든 자긴 자야하니까, 억지로 눈을 감고 있으면 진득한 눈물이 눈꺼풀 아래에 고이다 눈가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 끈적끈적한 눈물은 빠르게 식는데, 겨울철 잠자리 온도가 낮을 때에는 눈물이 들러붙듯 흘러 지난 자리가 살짝 시리고 아릴 때도 있다. 눈물이 식는 동안 나의 정신, 생각, 사고 그러니까, “아마도 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꿈의 언저리에서 휘청거린다. 망상의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에 갇혀 헤매는 꼴이다.

 

숲은 몹시 축축하고 어둡고 깊다. 여기서는 무엇과 마주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억지스럽고 터무니없는 장면을 수없이 마주하고 나면, 결국 모두 내 생각의 국경 안에 속한 것을 깨닫는다. 망상의 숲이 우거진 영역은, 새로운 기억의 강이 오래된 기억의 바다로 치닫는 하구 삼각주의 끝자락이다. 이미 잊었으므로 무엇인지 모르던 것들이 기억으로 재생되고, 현재의 근심이나 열의와 부딪혀 부조리극을 이룬 뒤 기억의 바다 얕은 해안 바닥으로 침몰한다. 삼각주의 하늘에는 항상 꿈과 현실 사이에 드리운 노을이 펼쳐져있다. 내 옆방 중년 남성의 재채기 소리를 예견하고서 그 소리를 효과음 삼아 산이 당연하게도 무너지는 꿈의 이야기를 준비한 것은 어찌된 영문인가. 꿈과 현실 중 어느 것이 먼저 반영되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노을이 일출의 것인지 일몰의 것인지 결코 알 수 없다.

 

노을 아래 삼각주의 숲에서 시달리다 깨어나면, 몇 가지 장면과 단어가 남아서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며칠을 내 염두에 맴돈다. 가끔은 새벽의 익숙하기 짝이 없는 장면을 연출하여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 기록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가 온전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꿈의 경계에서 헤매는 시간은 글에 쓰이는 재료의 그릇이기도 한 셈이다. 내 속에 담긴 알 수 없는 것들이 형상과 행위를 갖추어 내 앞에서 짧게나마 현현하여 끊임없이 은밀하게 아우성친다. 곧 내 글의 토양, 요람이다.

 

이 지독한 불면의 덫에서 탈출하여 막상 잠을 잘도 자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바뀔까. 훨씬 쾌활하고 의욕적으로 일상을 수행해나가겠지. 타인에게 더욱 친절하고 냉철한 사람이 되겠지. 깨지도 잠들지도 못하는 새벽 때문에 느끼는 권태와 공포에서 벗어나겠지. 깊이 잠든다는 행복감이 하나 더 늘겠지. 그러나 글과 싸워나가는 데 필요한 강력한 무기 하나를 잃는다는 사실은 명백할 것이다. 정녕 나는 꿀잠을 갈구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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