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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8] 감각의 무능 아래에서2_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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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1-05 09:47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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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로 이행하는 중요한 전환지점은 4번째와 5번째의 납치 사이의 쇼핑센터 씬이다. 피부가 없는 외계인의 형상, 동료 외계인 오토바이 남자를 뒤로 하고 거리 밖으로 나온 로라는 처음으로 길거리를 사람들처럼 걸어본다. 그 옆모습을 롱테이크로 잡는 카메라. 한순간 그녀는 뭔가에 걸려 넘어지고 주변에서 부축해주는 사람들이 몰린다. 도움을 받고 일어서서 황급히 걸어 내려가는 그녀는 멀리서 보여주는 카메라의 프레임 밖으로 쇼트아웃된다. 이후 이어지는 씬은 도시의 사람들 풍경.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성들, 가족들, 모든 인간 군상들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풍경들의 흔적 속에 그녀의 얼굴이 따뜻한 옐로우 색감의 화면에 은근히 이중노출되는 결정적 씬은 합성된 이미지들과 사운드의 몽환성을 극대화하며, 그녀가 어떤 문턱을 넘어 새로운 현실 차원으로 이행하는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만난 다섯 번째 남자는 기형적 외모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 외형의 외계인인 로라의 거울 속 이미지 같은 존재이다. 후천적으로 감각이 거세된 그와 생래적으로 감각이 부재한 그녀. 그녀는 그를 통해 이전까지의 남자들을 처리한 방식과 결별하며 포획을 포기하고 그를 풀어주고 도망친다. 도시 바깥, 그녀가 창조되었던 바로 그곳으로. 기형의 남자는 로라를 통해 감각을 사용할 기회를 얻는 순간 동료 외계인 남자로부터 죽음을 당하고, 로라는 인간으로서의 감각(먹는 것, 노래, 흥얼거림, 언어적 유희, 연애와 섹스)을 모방 욕망하는 기회를 얻게 되지만 원천적으로 좌절되며 인간 남자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동형적 운명 속에 놓인다.

 

엔딩 시퀀스에서 피부가 뜯겨진 채 불에 타버리고 만 그녀는 마치 그녀에 굴복당해 붉은 컨베이어벨트 속으로 빨려들어가던 희생양 남성들과 운명공동체인 양 보인다. 로라라는 주체는 대상이 되고, 인간과 외계인 로라는 마치 감각의 무능이라는 같은 원환 속을 윤회하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와 기형의 남자는 무력하게 빨려들어간 이들이나 무심히 외계의 임무를 수행하는 무정무감한 오토바이 외계인 샤크맨들과 달리 이제껏 감각하지 않은/못한 것을 시도하고 감각해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꿈 속같은 경험이었다 할지라도.(그가 꿈만 같다며 손을 꼬집으며 로라에게 말을 건네자 로라는 말했다. “, 꿈속이에요.”) 숲 속 쉼터에 누워 있는 그녀와 숲의 이중노출씬과, 불타버린 그녀가 설원의 바닥에 누워 마치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시점쇼트의 엔딩은 그녀가 지극히도 인간적인 무기력과 좌절, 그리고 장미꽃 가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아픔이라는 감각을 비로소 감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언더 더 스킨>은 로라가 잠시 들어갔던 등산객 쉼터의 감독 버전 같다. 텔레비전 광고, 뮤직비디오 등 스펙터클의 최전선에 선 감독이 근 10년간 묵히고 묵혀 만들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매력적인 눈으로 암시되듯 시각적 판타지에 최적화되어 탄생한 외계인간 로라의 궤적은 이렇게 스펙터클에 매혹된 현대인의 감각 마비와 무능을 보여주고 새로운 감각을 꿈꾸는 여행의 이중노출로 읽힌다. 바로 로라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혹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감각과 이미지의 세계를 환기하는 알레고리적 존재로 다가온다. 이 새로운 SF 영화는 일종의 쉼 끝에 던져진 결기의 영상이다. 잊혀진 미지의 역사, 프레임의 구도와 앵글, 쇼트들이 복원되고 발명되어져야 한다는 듯이. 익숙한 클래식한 현악기에서 찾아낸 앰비언스 사운드적인 미지의 선율과 사운드는 로라의 운명과 영화적 의미를 구원하는 듯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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