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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8] 감각의 무능 아래에서1_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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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1-05 09:45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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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8]

감각의 무능 아래에서

- 조나단 글래이저의 <언더 더 스킨> 리뷰

변혜경

 

 

<언더 더 스킨>(2013) 개봉 이후 가디언 지와의 어느 인터뷰에서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은 언어라는 도로에 쓰러져 넘어지지 않고도 시네마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고 했다. 이러한 영화적 태도는 30~1, 혹은 3~4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킬 이미지들에 몰두하는 광고와 MTV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의 명성에도 걸맞아 보인다. 이미지에 사로잡힌 존재로서의 감독. 언어를 대체하는 이미지가 아닌 새로운 언어로서의 이미지. 이미지들이 스스로 노래하고 조합되어짐으로써 구축되는 독자적인 하나의 영상물. 이것이 미셸 파베르의 동명 소설을 읽고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라면 영화 <언더 더 스킨>은 대체할 수 없는 오리지널리티로 감독 자신의 방향성과 역량을 십분 발휘한 성공작이 아닐까.

 

이 작품은 외계인의 인간 사냥을 다룬다는 점에서 SF 호러 스릴러 미스테리물로 분류되겠지만, 여타의 장르영화들과 선명히 차별화된다.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유명한 카르마폴리스뮤직비디오의 영화적 버전인 듯한 이 영화는(‘추적추적당함불에 타버림’) 영화의 주체로 외계인 로라를 세운다. 그녀의 로셀리니식 외관을 빌린 듯한 글래스고 여행, 즉 도시의 사람들과 세상을 보고 듣는 과정으로 서사의 디테일을 채워나가면서 ‘SF 스릴러=판타지라는 공식은 무화되고, 어떤 현실의 차원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바로 감각의 차원. 영상문화의 컨텍스트에 적응되어진 우리의 감각성문제를 얹어두고 인간과 로라의 감각의 현실과 운명을 포착해 낸다. 이는 외계인 이설리(로라) 시점으로 진행되던 원작 소설의 독창성만으로는 돌릴 수 없는 새로운 지점이다.

 

우선 로라라는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의 묘사의 영상적 탁월함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언더 더 스킨>은 스칼렛 요한슨의 이미지 그 자체가 하나의 영화인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은 로라의 탄생, 엔딩은 그녀의 죽음과 일치한다. 언어의 층위는 이미지들에 쓰러져 넘어진 듯 무력하다. 남자들을 유혹하는 관례적인 대사들 몇 마디 외에 그녀는 하나의 움직이는 물질같이 스크린을 점유하며, 우리는 그녀의 눈빛, 움직임, 행위들을 주목하며 따라가기에 매혹된다. 오프닝 시퀀스는 그녀의 탄생, 혹은 인간계로의 진입을 강렬한 영상과 사운드로 보여준다. 공공연히 큐브릭의 후예라는 듯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을 정면으로 인용한다. 지구의 시작을 알리던 광활한 별들의 움직임은 어느덧 그녀의 눈이 인간의 눈동자에 안착되는 순간이 되고, 요한 스트라우스의 고요하고도 명상적인 기개를 담은 교향곡(‘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운드는 클래식한 현악기들이 음과 비음(非音)의 경계에서 낼 수 있는 실험적이고 기묘한 사운드가 되어 오프닝 영상을 채운다. 문명이 비워진 곳, “아무것도 없어 좋은스코틀랜드 북부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마치 기적 같은 인류의 시작을 이어받은 듯 로라의 외계인간으로서의 존재는 이렇게 탄생한다.

 

이후 영화 러닝타임의 정확히 절반은 로라의 싱글남 포획을 다룬다. 장소는 글래스고 외곽 주택가와 도심지. 사냥을 위한 준비, 남자들과의 워밍업용 대화들, 낡은 집 안, 낯선 외계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네 명의 남자.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흥미진진한 SF스릴러가 되기에 충분한 이 모티브들이 매끈한 드라마이길 포기했다는 것이다. 옷과 화장도구를 고르러 간 그녀를 따라가던 카메라가 어느 순간 백화점을 점유한 사람들의 일상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쇼트들로 프레임을 채우거나, 차에 앉은 로라가 차창 밖으로 훑는 남자들의 모습들이 잉여적으로 다소 길게 화면을 점유한다. 심지어 로라와 남자들의 만남과 대화씬들은 차안에 숨겨둔 카메라들의 산물로 대본없이 이루어진 실시간적 대화들로 채워진다. 외계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남자들을 유혹하는 기이한 시각적 관능의 판타지 씬들이 아무리 그녀의 매력이 빛 발할 만큼 초현실적이고 강력했다 할지라도 그녀가 바라보는 글래스고라는 도시와 도시인들의 평범한 일상은 로라의 로드무비를 네오리얼리즘적으로 만들면서 또한 기이하게 비튼다.

 

이것은 인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공포를 증폭시키는 대상으로서 외계인의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SF스릴러 판타지도 아니고,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다루는 로드무비도 아니고, 전후(戰後) 군중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과 고대 유적지 유골을 통해 삶의 유한성과 사랑의 의미를 자각하는 네오리얼리즘도 아니다. 그녀의 능력, 즉 눈(시각)의 매혹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감각들이 그녀 주변을 침투해 들어오며 그녀의 역량을 흔들고 약화시키고 관능의 판타지는 해체될 것을 암시하는 단서들을 흩어놓는다. 남자를 처음으로 포획한 바로 다음 쇼트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로라는 차 안의 거울에 갇힌 이미지로서 포착되고,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청각)의 무게는 그녀의 관능미가 무색한 납치극에 불과한 것쯤처럼 보이게 하고, 장미꽃 가시에 찔려 피가 흘러도 아픔(통각)을 느끼지 못하는 감각의 불능, 혹은 무능한 존재로서 보여진다. 인간 피부와 완벽한 눈동자를 장착한 외계인의 무능한 불시착. 그리고 그럼에도 이 외계인의 유혹에 꼼짝달싹 못하는 시각적 발기기계인 남성 인간의 무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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