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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망하지 않았다_김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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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0-26 11:40 조회1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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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망하지 않았다

 

김석화

 

 

11월 9일이면 책방 한탸를 세상에 내어놓은 지 꼬박 2년이 된다. 수영팔도 시장 안에서 망미 골목으로 이사한 지는 1년이 넘었다. 그 사이 ‘한탸 그린’을 싱그럽게 칠하고 무수한 ‘한탸족’에게 꾸벅꾸벅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인사하며 지냈다. 처음 6평 공간에서 이제는 12평에 다락까지 갖춘, 크지 않지만 내 몸에는 너무 알맞은 공간.(점점 쌓이는 책을 보면 그리 알맞지 않지만 1인 운영에는 알맞은) 그 곳에서 커다란 책상에 달라붙어 책을 팔고 읽고 골목도 내다본다. 책방 유리문으로 한 귀퉁이긴 하지만 하늘도 보이고 바람도 보이고 비도 보인다.(그러나 사람은 잘 안 보인다) 밖에서 보면 나는 늘 같은 의자에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 테지만 실은 혼자 조용히 두리번거린다. 

 

 아직 망하지 않고 흥하지도 않은 책방. 그러나 망하지 않으면 흥한 것이라 여기며 이보다 더 할 수는 없을 만큼 책방의 얼굴을 닦고 닦는 중이다. 그래서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폐지 압축공 한탸처럼 책에 묻혀 등이 굽고 키가 줄고 책은 더 늘어가지만 아직은 의지대로 책방을 움직이고 있다. 

 

 책방 한탸는 독립 서점으로 공간은 작으나 책 욕심이 많은 몹쓸 버릇 탓에 책장과 매대에 책이 빼곡하다. 책을 판매한 만큼 고스란히 책을 입고하는 고로 ‘책 팔아 책 사기’의 기술은 녹슬지 않고 연마 중에 있다. 팔릴 책을 제발 들여 놓으라는 주위의 권유가 있어 서가를 둘러보니 내가 보기엔 모두 팔릴 것 같은 책 천지인데, 요지부동인 책들이 수두룩하다. 대형 출판사의 대대적인 광고나 언론 노출이 잦은 소수의 책을 제외하면 수많은 책들은 이름 없이 꽂혀 있을 뿐이다. 자신의 등을 애처롭게 보이며.(책을 사는 사람 자체가 적은 것은 이제 익숙해졌으나 팔리는 책만 팔리는 것에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와 몇 발자국 걷고 다시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쩌다 서가의 책을 열심히 살펴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장면을 보면 조금 감동적이기도 한데 사람들은 웬만해선 책들을 살피는 수고로움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고르는 수고보다 인증 샷을 위해 구도를 잡는 수고는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책방은 생태계 구조상 많은 책들 사이에서 큐레이션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은 책방 주인의 몫이다. 책을 주문하느라 고심할 때 나의 선택으로 고른 책들은, 팔리기를 바라고 또한 많이 팔고 싶은 책이다.(문학 칸이 점점 줄고 걸 보고 누군가는 ‘요즘 한탸는 운동 쪽으로 가나요’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실은 소설이 거의 팔리지 않는다) 큐레이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좋은 책들과 한탸의 얼굴에 맞는 책을 열심히 입고할 수 있고, 팔리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을 수 있다.(실은 많이 서운하다.) 팔리지 않으면 내가 읽으면 되니 아깝지는 않으나 세상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은 좌절된다. 그러나 가끔 눈을 반짝이며 ‘오호’를 외치며 꼼짝없이 꽂혀 있던 책들을 데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 다행이다. 

 

 어쩌다 찾아온 책방 주인의 삶. 그간 나는 책방을 길들였고 책방은 나를 길들여왔다. 그것이 관계라고 『어린 왕자』속 여우가 말했던가. 나는 이 공간과 유일한 마음과 다짐, 기쁨과 슬픔으로 관계 맺고 있다. 그것은 2년간의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세상의 수많은 책방들 중 하나이지만 유일한 얼굴과 형태를 지닌 공간. 그 애틋한 관계와 얼굴의 단단함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 책방과 나, 소수의 단골이 맺고 있는 그 관계 맺음이 조금 더 넓은 세상과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이 책방에서 길을 잃고 헤매어보기를 바란다. 아는 길에서는 길을 잃을 수가 없다. 몰라야 길을 잃는다. 자신이 익히 읽어오던 책, 너무 흔한 책, 너무 유명한 책 앞에서는 길 잃기를 시도할 수 없다. 낯선 책방, 낯모르는 책, 듣도 보도 못한 책, 내 시야 밖의 책이라야 길을 잃어보고 잃은 길 속에서 길 찾기를 시도해 볼 수 있다.(나 또한 책방에서 매일 길을 잃는다) 몇 발자국 걸으면 다 볼 수 있는 책방이지만 그 속에서의 시간과 책의 끌림은 무한하다. 이렇게 작은 곳으로 떠나 길을 한 번 잃어보시라. 그러면 반짝하고 어떤 책이 자신을 끌어당길 것이다. 그런데 책방은 정말 망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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