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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간식을 먹을 때_구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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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410회 작성일 20-10-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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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간식을 먹을 때

 

구설희

 

 

그림책 읽어주기 노동 1년차. 그림책에서나 할머니께서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일하는 책방에는 할머니께서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옛이야기를 접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호랑이이다. 호랑이 이야기를 접하면 접할수록 과거 한국에는 호랑이가 정말 많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전통사회를 대표하는 죽음의 요인에는 호환(虎患)과 마마(??)’가 있다. 조선초기 호랑이를 잡던 착호군(捉虎軍)이 전국에 1만명이 있었고, 1900년경 함경도 원산에서 1년간 거래되던 호랑이 생가죽은 500여 개였다고1할 정도로 말이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옛이야기 그림책(또는 옛이야기)으로는 <줄줄이 꿴 호랑이>,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호랑이 뱃속 구경>, <지리산 사냥꾼 아들> 등이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해와 달 오누이>도 포함해서. 옛 사람들은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현실의 두려움은 이야기 속에서 그 감정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간다. 그래서 옛이야기 속 호랑이는 결말에서는 하나같이 죽거나 사람에게 당하거나 사람에게 굽힌다.

 

우리가 권선징악이라고 흔히들 얘기하는 옛이야기의 흐름을 봐도 악하거나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는 모두 처벌 받는다. 교훈적이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세금과 각종 횡포에 지쳐있던 사람들이 이야기에서 어떤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또는 그런 이야기에서라도 악인들이 처벌 받기를 바란 건 아닐까. <호랑이 뱃속 구경>의 경우에 주인공 소금장수는 집채만한 호랑이에게 먹힌다. 먹히고 나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호랑이 뱃속으로 들어가기 전 호랑이의 목에 걸어두었던 줄이다. 호랑이 뱃속에서 줄을 잡아당기니 호랑이 머리부터 뱃속으로 끌려 들어가 똥구멍으로 나오는데, 결국엔 속과 겉이 발라당 뒤집힌 모습이 된다. 이건 절대적 힘에 대해 우리가 저항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그런 이야기를 주문처럼 여겼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호랑이는 편안한 친구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그림책 속 호랑이는 친근하다. 무서움이라는 이미지를 내려놓은 것이다. 처음엔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호랑이가 표현되어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접한다면 실제로 호랑이를 만났을 때 아이들이나 사람들의 생존에 불리할 것 같았다. ‘호랑이는 무서워해야한다고, 만나면 도망가야 한다고!’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옛날과 현대의 이야기 속 호랑이 이미지가 이렇게까지 다른 건 현대인은 호랑이를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호랑이는 동물원에서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반도에서는 멸절되다시피 했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정하고 그들을 보호하기까지 한다. 이제 호랑이는 토끼나 사슴과 차이가 없는 듯 보인다.

 

영국 작가 주디스 커의 그림책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호랑이와 비슷한 상위포식자인 사자를 주인공으로 한 <빨간 끈으로 머리를 묶은 사자>또한 그렇다.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의 경우 주인공 아이의 집에 호랑이가 문을 두드리며 방문하는데 이때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낯설지만 반가운 손님이다. 간식을 맛있게 먹고 간식 잘 먹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이제 그만 갈래요.”라고 말하며 호랑이는 사라진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많이 먹는 호랑이의 식욕이 나올 뿐, 호랑이가 가지고 있는 맹수적 특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호랑이는 자신의 위치를 보며 어떻게 생각할까. 지위를 잃어버려 슬퍼할까 오히려 인간과 친근해졌다고 좋아할까. 이야기에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인간도 언젠가는 공룡처럼 먼 과거의 화석으로만 존재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도 그림책이 남아 있다면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그림책에 묘사될까? 옛사람들은 너무나 비대해진 현대인의 욕망들을 예상했을까. 그림책에 나오는 호랑이를 보며 우리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에 대한 심리 또한 달라졌음을 감지한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절멸을 경험했고 거기서 우리의 절멸을 예상해보는 것도 그림책 또는 이야기가 주는 힘일 것이다.

 

1) 강석근 학술논문, 2019 <한국 호랑이의 문화 상징적 가치와 의미> 초록 참조

 

 

 

 

구설희: 어린이 전문서점에서 일합니다. 젠더와 동화에 관심이 많고, 에세이집<여름이웃>을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