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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나와 너의 그 틈들 사이에서_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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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8-03 17:23 조회1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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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8.03 서평

선물, 나와 너의 그 틈들 사이에서

-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읽고

변혜경

 

 

내가 함께 어울리며 배우는 것에 뜻을 두고 모임의 형식을 통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 올해로 딱 10년이다.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은 당시 독서모임을 시작하며 동학들과 함께 읽어본 책이다. 그리고 3년 전과 올해 각각 독서모임을 하며 증여론을 다시 읽었다. 명저들은 걸작의 영화들처럼 두 번, 세 번 보면서 그 의미의 풍부함과 진가를 깊이 깨닫게 된다. 그런데 같은 책을 혼자서 여러 번 읽을 때에도 그 맛이 다르지만 매번 다른 이들과 함께 다시 읽어보는 것 또한 특별한 독서 경험이 되기도 한다.

 

모스의 증여론은 원시부족사회와 고대사회에서 선물의 형식으로 나타난 증여의 원칙과 체계들을 고찰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인류학적, 고고학적 통찰을 통해 삭막한 교환 계약관계로 수렴되어져 가고 있는 오늘날 사회에 적용시킬 함의와 회복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공동체실험을 한 이력도 있고 지금은 관객들의 연대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 증여론이라는 책은 내게 남다르게 다가온다. 공동체나 연대에서 중요한 관계의 문제를 가장 근본적인 주고받기, 선물의 문제를 통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임 역시 하나의 작은 공동체이자 연대활동이라고 할 때 증여론의 그간의 독서경험들은 매번 만났던 동학들과의 관계, 교류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주고받기의 문화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공동체운동을 하며 읽었던 과거의 독서체험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은 선물이라는 개념을 다시금 개념화하자던 것이다. 특정한 물건들만이 아니라 말과 글, 몸짓과 표정, 행동과 태도 등 타자에게 건네는 모든 것들을 선물이라는 개념 안에서 생각하고 실천해 보려 했다. 그러한 개념도 체제와 불화하는 중요한 시도라 여겼다. 그리고 공동체를 건사하는데 가장 중요한 보이지 않는 노동을 선물과 증여의 차원에서 숙고했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생각 없이 자신의 노동과 재능을 내어주기, 그 무상의 노동에 잘 응대하기를 시도했다.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태도로 건네주고 응대하는 것의 어려움을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최근에 참여한 두 번의 증여론 독서모임에서 관심의 초점은 조금 달라졌다. 주고받는 물건들 속에 깃든 하우(hou, )라는 영적인 차원들, 감정가치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마르셀 모스는 원시부족의 증여관념과 증여의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받는 것은 그의 정신적인 본질, 영혼의 일부를 받는 것’(증여론, 71)이며 이들은 또한 물건 자체가 영을 갖고 있으며, 또 영의 것’(71)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하우()는 그 소유자에게 돌아오려고 최초의 수증자와 제 3자를 계속 쫓아다니므로’(70) 받은 것은 다시 답례해야하는 의무적인 순환이 가능했다고 말이다.

 

여기서 주목하게 된 것이 부족공동체들 간 통합과 유대를 가능하게 했던 순환이라는 관념과 실천들이었다. 이들의 유대가 돈독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영적인 가치들, 오늘날의 차원에서 말하면 감정가치들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연대에서도 중요한 것 또한 이 감정가치들을 끊임없이 순환시킬 수 있는가에 달린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내 방에는 내 것 아닌 물건들로 넘쳐난다. 누군가의 발제문과 인용문들, 동학들이 건네준 선물들이 군데군데 끼여 있다. 내 기억의 장소도 마찬가지다. 함께 한 이들의 말들과 제스처, 무수한 표정들로 채워져 있다. 어떤 증여들은 내 삶의 이정표가 되거나 나를 응원해주는 힘이 되는 선물로 빛나고 있지만, 또 어떤 증여들은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적대적이 되어버린 이들과 뒤섞이어 아물지 않을 흉터같이 남아 있다. 어떤 물건은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 아예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죄책감 같은 것이 남았다. 마치 고대인들의 생각의 잔재들이 남은 것처럼 어떻게든 돌려주어야 한다거나 관계가 회복되기를 무의식중 희망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호의나 선의로 시작했던 교류와 연대의 흔적들, 활발히 주고받았던 선물들은 이렇게 상반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게르만어에서 ‘gift’가 한편으로는 선물(don) 또 한편으로는 독(poison)이라는 이중적인 뜻을 갖고 있다(증여론, 224)고 한 모스의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선물이 선물로 이어질 때 나와 너를 갈라놓는 틈들은 어울림의 토양이 되어 연대는 공고해지고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선물이 독이 될 때 나와 너 사이에 틈은 화해불가능한 비틀린 틈으로, 함께 할 수 없는 무능의 틈으로 전락한 풍경들을 낳는다. 그리고 불편하게 중단되고 종결된 미완의 관계들이 주는 상처는 우리가 비판하는 현대사회의 비인격적인 교환 계약관계의 삭막함만큼이나 문제적이다.

 

아끼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 정성스레 돌보는 마음, 즐거움과 기쁨과 같은 감정가치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부주의하게 다루어질 때 도리어 그러한 감정들이 공동체에 독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증여에 깃든 애초의 선한 감정가치들을 나와 너의 관계의 역사에서 어떻게 오래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내가 아무리 섬세해도 상대방이 바라는 것을 매번 선물할 수는 없다. 또한 내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매번 받을 수도 없다. 이러한 무덤덤한 일상의 연속에서 관성화와 권태로움, 상심과 회한이 찾아와도 함께하는 주체로서 주고받기를 내내 실천할 수 있는 존중의 거리와 감정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주요한 과제처럼 다가온다.

 

반목, 무응답, 냉소 같은 일방적인 중단과 종결이 강자와 약자의 구도를 만든다면 끊임없는 순환을 실천하는 것이 공평을 낳는다. 이를 위하여 교환관계로 봉쇄당하고 실망과 불신으로 잘려져 나가는 감정가치들을 증여의 순환 속에 꾸준히 채워가 보는 것, 그것이 가능할 때 나와 너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들은 동등한 주체로서 어울림과 연대의 문화를 만들어갈 가능성의 무궁한 영역이 될 것이다.

 

공동체와 관계의 문제에 고심하는 이들, 감정의 영역에 관심을 가진 이들, 선물하기의 어려움을 체험하는 이들이라면 함께하는 동료들과 증여론을 읽어보는 것을 권해본다.

 

 

 

- 모퉁이극장 운영팀장, 관객문화활동가.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프로그래머. 과거에 독서모임을 하며 인문학공동체 운동을 했고 지금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관객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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