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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6] 연대의 공부가 우리 각자의 신화로 내려앉기를_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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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0-05 18:05 조회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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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6]

연대의 공부가 우리 각자의 신화로 내려앉기를

-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을 읽고

변혜경

 

 

공을 들이는 것,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숭고한 전통의 하나이지 싶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보다 큰 무엇을 위해 비는 마음, 예로부터 우리네 선조들은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그렇게 마음을 모으고 모아 빌었다. 그러면 천지가 감동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네 어머니들이 바라고 바라던 일들이 선뜻 이루어지는 날들도 있었다. 먹잇감 앞을 어슬렁대는 굶주린 금수들의 신중한 정성은 가 닿을 수 없는 차원이다.

 

모퉁이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한 영상문화세미나는 2015년부터 2년 남짓 지속했었다. 각자의 삶의 테두리에서 나와 이루는 연대의 공부가 되길 희망했다. 모퉁이극장 초창기부터 함께 하고픈 공부였고 오래도록 품어 왔었다. 우여곡절의 시간 속에서 다행히 좋은 계기들을 맞아 계획을 구체화하게 되었고 틈틈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세미나 준비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정화수를 떠다놓고 빌었던 건 아니지만, 정화수가 일상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성소라고 한다면, 세미나를 준비한 과정은 그처럼 일종의 성소, 성화의 시간들이었다고 할 만큼 함께 공들인 시간이었다.

 

그때 함께 읽었던 첫 번째 책이 <신화의 힘>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화의 유익함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지, 현대에 맞는 새로운 신화와 신화학은 어떻게 가능할지, 오늘날의 영웅이란 어떤 존재인지, 현재의 슬픔과 고통의 세계에는 어떻게 참여/개입할 수 있는 것인지, 나와 타자의 ()동일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종교에 대한 고민, 신화적 의례를 우리의 활동에서 어떻게 재해석하여 받아들일 수 있을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이런 주제의 토의 내용 자체도 각자의 관심사와 생각들을 알 수 있어 유익했으나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은 세미나의 진행 과정이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오프닝으로 세미나 방향을 잡아주는 오리엔테이션과 일독한 감상을 나누고, 전개부로 각자의 발제와 전원 코멘트를 주고받고 주요 인용문들도 선정하며, 각자의 클로징 멘트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발제의 말보다 동료의 말과 글에 대한 코멘트의 말을 중심에 두었기에 모임의 질은 경청한 뒤 돌려주는 말들에 좌우되는 방식이었다. 첫 모임이지만 사전에 공유된 약속을 각자 충실히 지켜주어 가능했던 밀도의 공부였다.

 

캠벨은 현대 사회가 비신화화한 세계라고 통탄하면서 신화의 미덕을 되살리고 우리의 천복, 소명을 좇아 살기를 권면한다. 합리적인 오늘이 전근대적 과거보다 진보되어 좋고, 여전히 합리성의 결핍이 아쉬울 따름인 오늘날, 캠벨의 제언이 젊은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영향력으로 가 닿을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흥미로운 읽을거리 이상의 신화’, 관혼상제 이상의 의례가 낯설고, ‘행성의 보편적 신화학은 낯선 먼 나라의 공상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약속이라는 공부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이 낯선 단어들과 암송할 인용문들을 만났고, 버성기더라도 이 책을 만난 이상 어쨌든지 내 생각과 감정 속 어느 구석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일상의 어느 순간, “...!”라는 조용한 탄성과 함께 에피파니의 순간을 경험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연대의 공부에는 명시된 이념도 목적도 없다. 하지만 공부의 밀도, 기울이는 마음들의 온도, 저마다의 꿈의 깊이들이 보태어져 모퉁이극장 영상문화세미나라는 하나의 커뮤니티, 공동체’, 하나의 어떤 그릇이 빚어져왔다. 모퉁이극장이 어디에 있나, 극장의 색깔이 무엇인가라고 할 때 극장을 드나드는 바로 우리들이 모퉁이극장인 것처럼, 하나의 공동체도 팀원들에 의해 그 운명이 시간 속에서 가시화될 것이다. 좋은 말과 글을 주고받으며, 연대의 경험들에서 무언가를 꿈꾸며, 또 무언가에 헌신하며 우리 각자가 모아 낸 노력들은 공동체를 향해가는 공부, 각자의 삶에 있어 미래적 순간을 선취하는 도전적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부디 시작된 연대의 공부가 있다면 각자의 삶에 한 경험이 되길, ‘신화가 되길, 그리하여 우리 각자 삶의 자리에서도 내가 몸담은 하나의 관객공동체가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가는 존재의 동력이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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