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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06] 다시, 이야기_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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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17 09:46 조회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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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06]

다시, 이야기

- 존 윌리엄스, 스토너를 읽고 

김재홍

 

 

불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내가 가진 사상이나 철학이 상대의 것과 너무 달라서, 상대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질려서, 상대가 구사하는 특정 화법이 계속 거슬려서, 그가 풍기는 뉘앙스나 태도가 다분히 공격적일 때, 등등의 이유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꽤 자주 불화의 감정을 느낀다. 이런 경우 우리는 대게 상대와 첨예하게 대립하다 갈라서거나 다시 화해하곤 한다. 갈라섰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화해하는 경우도 있다. 평생 화해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화해를 원하고 또 그렇게 된다.

화해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얼마 전 모 TV에서 프로그램에서, 심한 싸움 뒤 오랜 시간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두 방송인이 마주 앉아 대화를 끌어갈지 말지 결정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결국 화해하고 방송은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시청하면서 내가 관심을 기울인 부분은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 즉 각자가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서로 떨어져 지냈을 때 삶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술회 같은 것이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이어나갈지, 또한 화해가 완전히 이루어진 건지, 단편적인 장면들로는 쉽게 판단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각자 이야기를 나누며 불화를 딛고 화합의 단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나는 여기에 강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일상적 대화와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어떤 특수한 영역이 평이한 대화와 이야기 나눔사이 간극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역은 좀 더 내밀하고 본질적이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타자와 나를 둘러싼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고, 그 공간 안에서 서서히, 약간의 긴장과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끼며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과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잠깐이지만 웅숭깊은 세계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이야기 나눔의 본질은 소설의 본질과도 같다.

소설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수많은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소설은 세계와 나 사이의 이야기 나눔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의 불화를 겪으며 살지만, 그에 못지않게 세계와의 불화 또한 감내하며 살아간다. 세계와 불화할 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두려움과 환멸을 느낀다. 때론 우리의 존재 자체에 회의가 느껴질 정도이다. 이런 세계와의 불화는 일상을 점점 지치게 만들고 삶을 무력감에 휩싸이게도 한다. 올 한 해를 반 넘게 지나오면서, 나는 내가 정확히 이해하고 인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 안의 열정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껴왔다. 글쓰기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고, 스스로 내 재능과 자신감을 열등감으로 변모시켜왔으며, 삶을 둘러싼 많은 것들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결과, 나름의 방식으로 내가 가진 관심과 열정을 조금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택했고, 현재까지 일정 정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일시적인 회피로 이 불화를 유보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나던 중 스토너stoner라는 소설을 읽었다. 존 윌리엄스(John Edward Williams)라는 작가가 1965년에 발표한 이 장편은 출간되고 몇십 년이 지난 2000년대에 들어서야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연한 계기로 재조명이 된 후 소설의 인기는 나날이 치솟았고 지금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여러 작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명성에 걸맞게, 소설은 깊이가 드러나는 산문으로 삶에 깃든 우수와 인생의 아이러니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윌리엄 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다루는 소설은, 거의 평생을 미주리주대학의 영문과 조교수로 재직했고 남들이 보기에 매력 없고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스토너의 죽음을 통해 그의 생 전체를 반추하는 형식을 취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는 스토너의 삶의 굽이굽이 흐르는 물결이 차분하고 성실하게 흘러가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

스토너의 삶은대부분의 우리네 삶이 그렇듯표면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그는 실패한 결혼생활의 대가로 진정한 사랑을 빼앗기고, 원치 않는 싸움에 휘말려 교육자로서의 명예가 실추되는가 하면, 평생 남들로부터 일종의 괴짜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소설의 전 과정을 압축하여 보면 그렇다. 그러나언제나 그렇듯이것은 전부가 아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을 알았고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눈부시게 빛나는 그 사랑에, 두려움을 딛고 기꺼이 빠져든다. 또한, 주변은 그를 실패한 교육자로 봤지만, 사실 그는 대학 학문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것에 투신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소설 속에서 스토너는 차분한 정조로 삶을 인내하면서 내면을 가꾸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주변 상황은 스토너의 이상과 전혀 맞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존엄마저 위협에 처하게 하곤 했지만, 소설은 그를 자기 방식으로 삶을 진지하게 사랑했던 사람으로 그리는 것이다. 고독한 수행자. 작품을 통해 스토너의 삶을 톺아보며 그를 이렇게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자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을 위해 남들이 하지 않는 고난을 감내한다. 표면적으로는 스토너가 실패한 삶을 살았을지 몰라도, 그는 영혼의 삶을 위해 그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기꺼이 인내한다. 그 결과, 그의 삶의 진피층은 훨씬 깊고 충만한 것들로 채워진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장면에서는 스토너에게 가해지는 고난이 심히 가련하게 느껴져 공감성 괴로움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책장을 덮으면서는 묵직하고 잔잔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며칠 시간을 보내며 이 책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장면들을 곱씹어 보다 보니, 내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불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세상을 잠시 밀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세상이 내게 다시 말을 걸고, 내가 거기에 조금씩 반응했다는 것도.

꽤 오랜만에 밤새워 독서를 하면서, 스토너와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그려내는 풍경, 그 세계 속에 적당한 긴장과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끼며 잠시 머물다 온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나를 둘러싼 세계와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잔물결이 맘속에 잔잔히 이는 것을 느꼈다.

 

존 윌리엄스, 스토너, 김승욱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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