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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세계 속으로> 북마리아나 제도 편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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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7-20 11:20 조회1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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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7.20 미디어비평

<걸어서 세계 속으로> 북마리아나 제도 편

김민지

 

 

북마리아나 제도.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곳으로 들린다. 이곳에 유명 관광지인 사이판 섬이 있고 제도 동쪽에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미국 영토이지만 일본과 훨씬 가까운 북마리아나 제도는 16개의 화산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세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인구는 약 6만 명으로 대부분이 사이판에 거주한다.

 

원래 이 지역의 주인은 차모라 족이었다. 차모라 족은 16세기에 등장한 스페인에 의해 자신의 땅에서 밀려났고, 그 이후 독일과 일본의 지배 대상을 거쳐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계 주민인 이곳은 관광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류 산업이 활발히 이루어졌었지만 WTO의 생산 쿼터가 폐지되고 관세혜택이 사라진 2007년 이후 급격히 쇠퇴했다. 이에 타격을 입은 지역 경제도 침체에 빠진 상황이다.

 

지난 78일 방송된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등장하는 북마리아나 제도는 앞서 언급한 경제위기나 복잡한 역사와 무관한 낙원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태평양의 맑고 깨끗한 바다와 화산지형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경관, 이곳이 따뜻한 남쪽 나라임을 말해주는 야자수들까지. 그것은 주말 아침 TV를 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영상이었다. 아름다운 자연뿐만 아니라 다이빙, 스킨스쿠버, ATV 등 다양한 해양 레저 활동들도 소개했다. 입맛을 당기는 음식들을 앞에 둔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 관광객들은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그곳에서 느끼는 자신의 행복을 인터뷰했다. 북마리아나 제도로 꼭 놀러오라는 이들의 머리 위에 있던 드론은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섬의 전경을 한 눈에 펼쳐보였다.

 

하지만 미디어가 주목한 이러한 북마리아나 제도의 모습은 아주 협소한 단면에 불과한 것이다. 북마리아나 제도가 품고 있는 과거의 기억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의 부조리는 카메라맨의 시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다. 영상은 레스토랑에서 푸짐한 식사를 즐기던 관광객들 앞으로 열 맞춰 걸어 들어오는 원주민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들은 열정적으로 전통춤을 추고 화려한 불쇼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아마도 과거 이 섬의 주인이었던 차모라 족의 후손일 것이다. 공연자도 관람객도 모두 만족스럽게 저녁시간을 보내는 듯 그려졌다. 한 미국인 관람객은 대단히 즐거워하며 춤을 추는 사람들도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다. 댄서 중 한 명도 춤을 보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자신도 기쁘다고 전했다.

 

50분 남짓한 프로그램에서 가장 괴상한 순간이었다. 섬의 주인이었지만 온갖 제국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관광 상품의 하나로 전락해버린 원주민과 그들을 바라보는 백인 관광객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근대가 낳은 폭력의 한 장면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근대 제국주의는 세계 곳곳의 섬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관념 속에 가두어왔다. 섬은 백인이 살지 않는 열등한 공간으로,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소비재로, 그리고 반나체로 돌아다니는 여성들과 마음껏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락의 장소로 인식되었다. 북마리아나 제도 역시 여타의 섬들과 비슷한 역사를 겪어왔고 TV가 보여주는 섬의 이미지 역시 부유한 나라의 거대한 리조트의 전형이었다. 관광객은 자신들 앞에서 춤을 추는 원주민이 진심으로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래야만 자신이 갖고 있던 관념,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과 거기에 사는 친절하고 욕심 없는 원주민이라는 인식이 현실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나의 소비재로 전락한 원주민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국주의에 저항할 주체와 힘을 갖기도 전에 이미 항거의 가능성을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점차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는 원주민에게 남은 선택지는 계속 상품으로 기능하거나, 섬을 떠나는 것이다.

 

두 명의 젊은 원주민은 인터뷰에서 섬을 떠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했다. 백인들 앞에서 춤을 추던 17세 소녀의 장래희망은 군인이었다. 군인이 되면 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도와 물고기를 잡던 소년의 장래희망은 해양경찰이었다. 해양경찰 역시 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직업이었다. 북마리아나 제도가 처한 현실은 이들의 바람을 통해 투영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 부유한 국가의 국민들이 낙원 혹은 천국으로 묘사하는 이 섬을, 그들은 하루빨리 탈출하고자 했다. 이곳에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은 관광산업에 종사하며 잘사는 나라의 경제상황에 자신의 생계를 의지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의 지방 청년들이 어떻게든 서울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북마리아나 제도의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이유를 찾자면 결국 근대 제국주의의 식민지 사업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TV는 결코 이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두 사람의 인터뷰는 그저 꿈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정도로 그려진다. 섬을 떠났을 때 느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전면에 내세우며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버리고 만다. 이렇게 영상 속 북마리아나 제도는 현대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가족 간의 정이 남아있는낙원으로 그려진다. 여유로운 주말 아침 시간에 TV를 보며 언젠가 저곳으로 가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시청자의 머릿속에 북마리아나 제도의 역사적 배경과 현재 마주한 곤경이 자리 잡을 장소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16세기 스페인 인들과 함께 들어온 전염병으로 차모라 족의 90~95%가 사망했다. 그 덕분에 섬의 식민화는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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