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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근본주의02] 남아있는 나날_정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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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10 20:59 조회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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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근본주의02]

남아있는 나날 

정진리 

 

 

주춤하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도화선이 다시 불붙고 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이 더운 여름 마스크 한번 여미기가 조심스럽다. 전광훈을 필두로 하는 사랑제일교회의 광기 덕분이다. 밉다. 집단 감염도 모자라 비협조적인 자세까지 몽땅 밉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사회가 마비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미운 감정이 결코 그릇되지 않다 느낀다. 신천지 교주는 납작 엎드리기라도 했다. 시민과 사회가 몰아붙이면 붙일수록 전광훈은 스스로 아무 잘못이 없음을 항변하며 더욱 발광한다.

지난 언행과 행실로 비춰보아 전광훈은 목사가 될 만한 그릇이 결코 못 된다. 2005년 그는 젊은 여자 집사에게 빤스를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입니다라는 발언을 일삼았는가 하면 작년 가을에는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자신이 믿는 신 위에 군림하려는 역발상적 망언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올해에는 애국집회 참석하면 전염병도 낫는다며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런 그를 그 자리에 앉힌 건, 목사면 일단 따르는 맹목적인 교인 일파와 한국 기독교의 그릇된 신앙 실천 방식이다. 즉 전광훈만 욕할 게 아니라, 그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세태를 깡그리 발본해야 우리 시민의 분노가 조금이나마 가실 것이다.

믿음이란 본디 무조건적인 태도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믿음과 그 믿음의 대상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다. 의심의 조그만 한 방울까지 샅샅이 훑어내지 않고서야 어떻게 무언가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한 과정이 생략되었다면 그 믿음은 형식과 관습만 남은 거짓 믿음에 불과하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소설 남아 있는 나날에서 이러한 믿음의 속임수를 교묘하게 비판한다. 작중배경은 제2차세계대전의 기미가 드리워지는 어느 날로, 주인공은 집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 스티븐스다.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그는 자신이 가꿔야할 집 달링턴 홀이 언제나 깨끗하고 아늑할 수 있도록 집사 업무에 끝없이 복무한다.

그런데 그가 따르는 달링턴 경은 명예와 품위를 지키는 데 취해 독일과 나치의 음모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진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달링턴 경은 각국의 인사가 모인 자리에서 히틀러를 옹호하기에 이른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그는 몰락하고 달링턴 홀은 미국인에게 넘어가고 만다.

이 소설의 매력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주인공의 태도에 있다(그러니까 이 소설의 시점이 1인칭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서술 전반에서 스티븐스는 자신이 잘못 살지 않았음을 은밀한 뉘앙스로 거듭 어필한다. 그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주인을 섬겼다. 그가 가꾼 달링턴 홀은 제1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에 대한 동정을 이끌어내려는 달링턴 경의 물밑 정치의 장으로 기능했다. 그토록 노력했던 결실이 사실은 반인류적인 재앙에 가담한 꼴인 것이다. 결과를 두고 스티븐스는 제 탓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분명 책임은 그 자신에게 있다. 몇몇 인사들이 스티븐스에게 와, 주인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조언해도 그는 듣지 않았다. 일류 집사의 품격이라는 이미지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는, 모름지기 사람이란 자신의 판단으로 삶을 바라봐야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잘못된 길로 가는 주인을 방관했다.

다시 말해 전광훈만 문제가 아니다. 저러한 또라이는 세계 지천에 있다. 그러나 비논리를 숭앙하는 교인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면, 한국 기독교가 마음대로 유권해석한 교리와 교의의 오류가 아니었더라면, 저런 정치병 환자가 오만방자하게 떠들어댈 수 있었을까? 합리적 의심마저 원천봉쇄하는 기독교의 오만이, 신앙이 지성에서 비롯함을 알지 못하는 교인의 아둔함이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소설 근본주의>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소설로 풀이하는 편협한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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