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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나오는 아이의 젠더_구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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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09 17:03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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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나오는 아이의 젠더

 

구설희

 

그림책을 읽으면 젠더적 차별이나 성(sex)적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이 남/여에 상관없이 아이로 생각되어지는 경우가 많고 동물이 의인화된 경우가 많아 성별 고정관념이나 성차별적 표현을 잘 느끼지 못했다.(물론 엄마의 이미지는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러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책이 많다. 평화, 평등, 동물권, 자연환경 보호를 다룬 책 등. 요즘엔 그림책도 워낙 다양하여 우리가 겪는 일상적인 폭력이나 계급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퀴어, LGBT를 다룬 책도 나오기 시작했는데 성정체성을 다룬<그래도 넌 내 친구>가 번역되어 나왔고, 최근 나다움 어린이책으로 기사화 되었던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도 있다.*

1년차 그림책 읽어주기 노동자. 이렇게 그림책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느끼고 있지만 읽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때도 있다. 얼마 전 읽었던 고미 타로의 <몸의 구석구석 말하기를>이라는 책이었다. 그는 일본출신의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이다. <저런 벌거숭이네> <누가 숨겼지> <누구나 눈다> 등 단순하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많이 그렸다. 나도 물론 좋아하는 작가이다. <몸의 구석구석 말하기를>이라는 책에서 문제로 느낀 건 주인공 남자아이의 말과 태도였다. 이 그림책은 몸의 구석구석이 말한다면을 전제로 전개된다. 몸의 구석구석이 말을 하니 눈도 등도 손도 혀도 모두 말을 한다. 물론 고추도 말을 한다. 재미난 아이디어였지만 문제는 남자아이가 옷을 벗으면서 시작된다. 아이는 옷을 홀딱 벗고 자유로움을 느끼는데 그렇게 벗고 돌아다니면 누군가가 불편할 터. 때마침 지나가던 또래 여자아이가 화를 내며 와서는 남자아이의 옷으로 그의 하반신을 가려준다. 때마침 몸의 부분인 고추그래, 좀 심하긴 해라고 말하며 부끄러워한다.

문제는 이때 남자아이의 반응인데, 자신의 허리에 옷을 묶는 여자아이의 머리 냄새를 맡으며 ~ 향기로운 샴푸 냄새라고 말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거였다. 부끄럽고 지적을 받았는데 그 상황에서 여자아이의 머리 냄새를 맡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걸 다르게 생각하면 남성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남자아이에게 투영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남자아이의 성기를 고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전통적 성별고정관념에 비춰 일반적인 장면이라고 생각되지만 여자아이의 머리 냄새를 맡는 건, 여성에 대한 성인 남성의 시각이 아닌가 염려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더 느낀 문제의식은 그림책에서 남자아이의 성기 고추는 여자아이 보다 자유롭게 표현된다는 점이다. 남자아이는 맨몸으로 물놀이를 하고 자연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장면이 많은데 거기서 성기를 그린 장면이 꽤 많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경우는 옷을 입지 않고 나온 경우가 드물고 나온다 해도 성기부분을 가리거나 남자아이와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성기를 지칭하는 명사도 고추만큼 자연스럽게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보는 그림책에서부터 남성의 몸이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언급표현되는 것은 남자의 몸을 가진 아이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긍정적 자아를 심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의 성(sex)과 성기에 대해 자유로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반면 여자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 같은 경우도 페미니즘을 배우기 전에는 몸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여성들과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대부분은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여자의 성기도 고추만큼 자유롭게 불릴 단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여자아이의 몸도 남자아이의 몸만큼이나 그림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신체에 대한 담론과 젠더뿐만 아니라 성(sex)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여성의 몸은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억압되거나 기능만을 부각시켜 대상화, 남성의 입맛에 맞게 성애화 되어 있다. 그것 말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성의 신체, 더 긍정적이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을 창안하고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다양해지고 있는 그림책은 달라지고 있는 분위기를 방증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논의들이 나오지 않을까.

오늘 책을 정리하던 중에 <씩씩한 엄마 달콤한 아빠>라는 그림책을 보았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그림책에는 성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엄마, 아빠의 모습이 나온다. 못도 뚝딱 잘 박는 엄마, 요리도 뚝딱 잘하는 아빠, 다정한 엄마, 달콤한 아빠 등. 이 책처럼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더 많이 나오기를, 다양한 여자아이의 모습을 그림책에서 더 많이 보게 되기를.  

 

 

*물론 이 책은 동성애만을 다루지 않았고 세상 온갖 종류의 사랑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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