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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5] 신년 계획_윤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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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03 13:06 조회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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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5]

신년 계획

윤이삭

 

 

  아내가 이혼을 입에 올린 것은 올해 초였다. 전자레인지로 데운 즉석 미역국을 떠먹으면서였다. 마치 올해는 다이어트를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말투였다. 나는 국그릇을 싱크대에 담고 물로 가볍게 헹궜다. 미역줄기가 배수구에 흐느적흐느적 빠져나갔다. 후식은 냉동실에 있는 얼린 망고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온 겨울, 아내는 이혼 서류를 내밀었고 나는 전처럼 어물쩍 넘길 수 없었다. 식탁에 놓인 서류는 새하얗고 네모난 아주 구체적인 형태였다. 아내의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는 이미 채워져 있었다. 아내는 캐리어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섰다. 연락 줘, 하고 말하면서.

  연말에 있는 자질구레한 만남을 모두 뒤로한 채 나는 누워있었다. 아내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와 이혼을 결심한 이유를 놓고 셈했다. 결과적으로 무게 추는 자꾸만 이혼 쪽으로 기울었다. 무뚝뚝한 성격과 입사 동기 중에 홀로 멈춰있는 진급. 두툼해진 뱃살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내가 이혼을 결심할 이유는 사방팔방에 놓여있었다.

  반대로 아내가 왜 결혼을 했는지 떠올리기는 쉽지가 않았다. 1년의 연애와 4년의 결혼생활. 연애 때의 기억을 휘저어 봐도 마땅히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굳이 꼽자면 아내가 딱 한 번 스스로 말한 것이 있기는 했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장점이랬다. 그것이 아무리 장점이래도, 결혼까지 결심할 이유로는 충분치 않았다.

  담배를 피운 적이 없진 않았다. 군대 선임과 직장 상사가 주는 눈치에도 입에 대지 않은 담배였지만 인생의 단 한 시기, 나는 분명 담배를 피운 적이 있었다. 다만 애연가들이 담배를 피울 때 즐긴다는 근거 없는 안도감 따위는 배우지 못했다. 담배를 떠올리자면 턱에 힘이 들어가면서 절로 긴장했다. 귓전에서 대앵- 대앵- 하는 오래된 종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아버지의 담배를 훔쳤던가. 옆자리의 짝이 권했던가. 둘 다일 수도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딜 가나 담배를 피울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산으로 이어지는 돌담길이나, 운동장 철장 너머, 의미를 모를 철제 흉상 뒤 같은 으슥한 곳 말이다. 담배는 일종의 게임 같은 것이었다. 숨어서, 시간 내에 담배를 피우는 임무를 완수한다. 그게 전부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마침내 최적의 장소를 발견했다. 바로 신관에 딸린 교사 화장실이었다. 본관과 떨어진 곳이라 교사들이 지나다니지 않았고, 변기통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 설령 교사가 오더라도 동료 교사라 여기는 눈치였다. 학생이 교사 화장실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울 것이라곤 생각지 못하는 듯 했다.

  석식을 먹기 전 자습 시간에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야산에 있는 사찰에서 저녁 타종을 했다. 땅거미가 깔리는 가운데 종소리가 멀리, 멀리 메아리쳤다. 누군가에게 들킬 지도 모른다는 초조함과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허무함에 종소리가 섞여들었다. 담배 연기가 무심히 칸막이 너머로 뻗어나갔다.

  손을 씻고 나오는데도 종소리는 길게 이어졌다. 학교 건물을 에워싸듯 종소리가 가득 차올랐다. 복도에 난 창문으로 사찰이 정면으로 보였다. 기와를 올린 2층짜리 사찰은 스님들이 생활하는 컨테이너 박스를 옆구리에 낀 단출한 형태였다. 그 컨테이너 박스 옆으로 교복을 입은 몇이 손을 털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낯익은 면면으로 보아 같은 학년인 듯 싶었다.

  석식을 거르고 야간 자율 학습을 기다리는데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 좆됐다.”

  교실 문을 열고 반장이 소리쳤고 출발 신호라도 받은 듯 모두 뛰쳐나갔다. 복도는 매캐한 연기로 가득해 기침을 멈출 수 없었고, 무엇보다 낮처럼 환했다. 기침을 멈추지 못하면서도 학생들은 어깨를 맞대고 복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사찰이 활활 타올랐다. 야산의 초입부터 시작해 불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케익에 꽂은 초처럼 사찰은 점점 균형을 잃어갔다. 뒤늦게 화재경보음이 교내에 울려 퍼졌다. 비로소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건물을 빠져나갔다.

  스님들을 비롯해 신도 몇이 사망했다고도 하고, 모두 무사히 대피해 인명피해가 없다고도 했다. 따로 범인이 잡혔는지도 알 수 없었다. CCTV가 지금처럼 이곳저곳에 깔린 시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목격자가 한 명도 나오질 않았다. 학교는 학생들을 철저히 감독하기 시작했고, 그런 분위기는 졸업 때 까지 이어졌다. 모두는 그날의 불구경을 잊지 못할 추억이라도 나눠가진 듯 자주 화젯거리로 삼았다.

  나는 아내에게 연락을 할까 망설였다. 연락을 해서 우선 사과부터 할까, 정말 이혼할 작정인지 슬쩍 떠볼까, 무작정 이혼은 못한다고 떼를 쓸까 궁리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결국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 알고 있었다. 머리 아픈 일은 무작정 덮어두는 것이 나의 해묵은 버릇이었다. 어쩌면 내가 잘 알고 있는, 어찌 못할 이 버릇이 이혼의 결정적인 사유일지 몰랐다.

  누워서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아닌 밤중에 어떤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환청이 들리는 줄 알고 소스라치게 일어났다. 소리는 세기를 키우면서 방안에 서서히 차올랐다. 대앵- 대앵- 하고 울리는 소리. 오랜 기억을 간질이는 소리. 마침내 그 소리가 커다란 종소리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갑작스럽고도 간절한, 갈증과도 같은 느낌에 베란다로 향했다. 상쾌한 바람이 갈증을 누그러뜨렸지만 반대로 종소리는 더 크게 다가왔다.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힌 도시는 더 세차게 종소리를 피워 올렸다. 비로소 나는 오늘이 새해임을 깨달았다. 어떤 초조함이 들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지갑을 챙겨들고선 현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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