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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개의 돌_김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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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8-28 15:34 조회1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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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개의 돌

 

김석화

 

 

 

두 집 살림을 한다고 어디에서 말했더라.

 글에 쓴 거 같기도 하고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말한 거 같기도 한데, 둘 다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온 몸을 헤집고 다니는 말이라 말하지 않고도 말한 듯 느껴지는 지도. 저 두 집 살림 살아요. 하지만 어른 남자는 부재한 곳이죠. 집에는 청소년이 둘 있고, 책방에는 여자 동무들이 있어요. (책방을 아끼는 희귀한 남자 동무들이 셋 있지만) 매일 집 두 개를 그리고 그 속에 나를 놓아둔다. 그리고 물음표. 책방은 나에게 언제부터 집이 되었나. 책을 팔려고 차린 곳. 매달 월세 앞에서 산수는 맥이 없고, 집처럼 책이 쌓여가는 책방을 집으로 여기는 낙관은 위험하지 않나. 책방은 집이 될 수 있나. 책방이 집이 되어버리면 나는 두 집을 메고 있느라 폭삭 망해버릴지도 모르는데. 이것을 되새김질하느라 체한 듯 지내는 중이었다.

 몇 년 만에 집을 나서서 엄마 집에 갔던 날. 

 부산 냄새를 벗고 주문진 냄새를 입으며 엄마의 살림살이를 마주했던 며칠. 이제는 썩 편하지 않아 손님처럼 공손히 다녀와야 하는 곳. 이젠 내가 집이 되어 버려서 엄마 집 안에 나를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닫혀버린 문 같은 두 사람의 몸이 애잔한 노크도 없이 며칠 놓여 있었다. 최악의 상황으로 엄마 집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지 않는 한 유령처럼 슥 다녀올 그 곳에서, 나는 두고 온 두 집 살림을 내내 떠올렸다. 생각할수록 천장과 벽은 슬퍼지고 장벽 같은 책장들은 속수무책으로 막막하다. 그러나 내가 선택하고 만든 이 집들의 형태를 또한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낙관과 비관, 비판과 긍정 속에서 생각을 공그르기. 생각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생각할수록 낙관으로 기울기는 한다. 그래서 뭔가 구조적이고 명쾌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책방을 집이라 여겨보자 했다.(이미 내게는 집이었던 것을 다시 긍정하는 것으로)

 환대의 집으로.(누군가 문을 열어야 가능하지만) 

 책과 사람을 환대하는 곳으로.(물론 매우 예의 없는 손님들이 수시로 등장하지만) 

 사는 내내 재미나게 놀아보지 못했으니 이제야 사람들과 어울려 잘 놀 수 있는 집으로.(가능하다면)

 소연은 이 주간의 짧은 방학을 책방에서 보내고 돌배는 배달하다 들러 목을 축이고 설희는 주말 한낮을 은근히 지내다 간다. 대성 선생님은 매달 몇 권의 책을 꼬박꼬박 주문하고 돌배의 서울 손님들은 꼭 책방에 들러 책을 한 움큼씩 사간다. 누군가는 병원 갔다 오는 길에 들러 짧은 수다를 던지고 어떤 이는 책방 옆에서 나란히 술집을 하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해를 맞고 달을 맞듯 사람들을 맞이하다 보면 가끔 기가 막힌 풍경이 일어나기도 하고 주고받는 책과 오고가는 책값에 쑥스러운 진심이 전해지기도 한다. 일반 손님과 책방 동무들의 걸음이 아주 천천히 책방의 무늬가 되어간다. 그러니까 장소 있는 곳, 연대기 있는 책방, 허름하고 작은 역사를 지어가는 집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일주일 만에 출근한 책방. 이제 이곳은 집이 되었나.

 

 인류가 멸망해버린 세계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 눈사람은 신인류 크레이커들을 이끌고 해안에 도착한다. 이곳은 정말 아름다워요. 아, 보세요! 저게 깃털인가요? 이 장소의 이름은 뭐죠? 눈사람이 말한다. “이곳은 ‘집’이란다.” (『오릭스와 크레이크』)

 

 나는 결코 산 위에서 집을 찾지 못할 것이다. 알고 있다. 집은 오히려 여기 내 몸 안에서, 내피부 아래 깊숙이 박혀 있는 모든 것들에서 시작한다.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이 결코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수많은 다른 몸들이 내 몸을 따라다니고 강조하고 내 몸에 힘을 보탠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몸은 집일 수 있다.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은 장소와 공동체 그리고 문화가 우리의 뼛속 깊이 파고들어 있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집일 수 있다.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은 언어 역시 피부 아래 살아 있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집일 수 있다. ……집으로서의 몸을 창조해야 한다. (『망명과 자긍심』)

 

 집이라는 게 뭘까요? 어디에 계실 때가 편해요? 장소가 중요한가요, 아니면 사람이 중요한가요? 세상, 장소...집이란 뭘까요? 집은 현실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 말도 있잖아. 집은 마음속에 있다고. 맞아, 마음속에 있어. 마음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면 온 세상이 네 집이 되는 거지. 하지만 쉽지만은 않아. 힘든 일이지. (EIDF 2020 ‘발헨 호수의 비밀’)

 

 북아메리카 미시시피 강에 사는 강처브라는 신기한 이름의 물고기는 수컷이 강바닥에 집을 짓는다. 넓적한 주둥이로 강바닥의 돌을 집어 날라 피라미드 형태의 큰 집을 만든다. 제법 집다운 꼴을 갖추면 돌 나르기를 멈추는데 이 물고기가 나르는 돌의 개수가 거의 7000개. 집이 다 지어지면 암컷에게 구애하고 암컷은 그 돌무더기 집에 안전하게 알을 낳는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TV 다큐)

 

 내가 지금 여기에 다다른 것.

 손에 무엇 하나 움켜잡을 것 없이 몸 하나를 움직여 수많은 방과 집을 통과한 움직임이다. 그 구부러지고 미끄러짐 속에서 단단히 손 안에 잡힌 것이 책이다. 최근 돌배가 선물한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더 움켜쥐고 있다. 버리지 않는 한 내 것이 아닐 리가 없는 책과 돌멩이. 

 세계가 멸망한 곳에서 바닷가는 크레이커들의 ‘집’이 되고 일라이 클레어는 장애와 퀴어가 혼재하고 온갖 폭력의 빗금이 가득한 몸을 ‘집’이라 선언한다. 4대가 살아온 독일 발헨 호수가의 집에선 여성들의 서사가 건네지고 건네받는 중이다. 강처브가 주둥이로 나른 7000개의 돌은 강바닥에서 집이 되고 허물어지기를 반복하는 중일 것이다.

 한탸라는 문패를 달고 집을 만든 것.

 나 또한 주둥이로 7000개의 돌을 나르는 중이다. 이 세계의 물살을 거슬러. 책을 안전하게 놓아두기 위해. 돌멩이처럼 단단한 그것을 누군가에게 건네주기 위해. 다만 그 물고기와 달리 이 집은 몇몇의 동무들이 그 물살 아래에서 같이 돌멩이를 날라 와 지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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