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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05] 플롯을 넘어서_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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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8-27 09:38 조회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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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

플롯을 넘어서

- 찰스 백스터, 서브텍스트 읽기를 읽고 

김재홍

 

 

종종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자신과 내면세계 안에서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우리 내면을 우리가 실제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과 다른 영역으로 바라본다. 이 영역은 깊고, 아이러니하며, 정신분석 연구에 활용되기에 적합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의 훌륭한 영화나 소설들은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며, 세련되고 절제된 언어로 문득문득 그것을 드러내는 데에 공을 들인다. 이 내면의 세계는 노골적이거나 직접적인 언어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소설에서 이것은 일종의 불문율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오고 보아온 대부분의 훌륭한 소설에서 이 내면의 영역은 직접 말해진 부분에서보다 다른 세부 묘사나 상황, 대화를 통해 넌지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언외의 부분, 글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 글자로 표현된 부분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다른 부분, 이것을 서브텍스트 subtext라고 부른다. 서브텍스트는 겉으로 드러난 플롯, 그 안에 숨어 있으며,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서브텍스트를 내면의 세계와 동일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브텍스트는 내면의 세계를 비롯해 우리의 삶 속에서 깊고 은밀하게 숨어 있는 여러 아이러니를 드러내 보여주는 일종의 도구와도 같은 것이다.

서브텍스트 읽기는 문학 작품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서브텍스트의 역할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한 책이다. 찰스 백스터(Charles Baxter)는 여러 권의 장편과 단편 소설집을 낸 작가이자, 기획 편집자, 문예창작학을 가르치는 교육자이자 이 책의 저자이다. 저자는 앞서 설명한 서브텍스트, 즉 글로 표현된 부분이나 드러난 부분이 아닌, 소설 속에서 나타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요소들의 비밀을 여러 장에 걸쳐, 여러 작품을 예로 들며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을 비평서가 아닌 사립 탐정의 보고서로 생각해 달라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점차 깨달을 수 있는데, 저자는 서브텍스트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문학 작품의 텍스트를 인용하면서 돋보기를 들고 자세히 관잘해가며 비밀의 실마리를 차츰차츰 풀어 나가는 꽤 재밌는 글쓰기 방식을 선보인다. 저자는 이 책의 부제를 ‘beyond plot’이라 명시해 놓고 있다. 해석하면 플롯을 넘어서라는 뜻이 되는데, 단순한 스토리와 플롯에 대해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서 더 나아가, 문학 작품 속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요소(p.7.)”를 추적하고 탐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을 어떤 장면에서 어느 곳에 배치시킬지, 그렇게 함으로 글로 표현되지 않은 이면의 진실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암시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해 작가들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경우, 작가는 무대 연출가가 되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때처럼 모든 요소들을 세밀하게 직조해야 한다. 이러한 자질이 작가들에게 필요한 연출의 기술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1). 이렇게 외적인 상황을 직조해내는 능력과 더불어, 작가는 사건 속에서 등장인물이 특정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욕망이나 두려움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영민한 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진짜 욕망(두려움)과 가짜 욕망(두려움)을 구분하면서 진짜 욕망(두려움)의 정체를 파악하고, 진정으로 원했던 것을 갖게 되었을 때 그것이 실제로는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서브텍스트적인 요소는 이야기의 원천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2).

나아가 저자는 듣지 않는 것을 듣는 행위, 즉 등장인물이 소설 속에서 어떤 난청의 상태에 빠져 있는 경우를 주목해야 한다며, 우리가 듣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보의 과잉으로 허덕이는 현대사회에서는 들리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p.81.)” 못하는 경우, 즉 심리적 난청과 부정이 병적인 자기애와 우월 성향, 정신적으로 상처받기 쉬운 상태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훌륭한 소설은 바로 이러한 점을 파고들며, 누군가가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상태에 놓였을 때, 작가는 바로 거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3).

다음으로 저자는 소설 속에서 우리를 불신의 자발적 유예(p.109)’ 상태로 빠져들게 만드는 어조와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불신의 자발적 유예란, 우리가 소설 속에서 개진되는 상황과 사건에 애착을 가지게 될 때”, 즉 소설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더 이상 가공의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즉 우리의 불신을 유예한다는 것이다. 불신이 유예될 때, 우리는 작가가 직조해낸 상황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건과 상황의 장면, 그 안의 긴박감과 감정이 우리 눈앞에서 재현되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작가가 글의 어조와 호흡에 어떤 변화를 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4).

이어 저자는 극적인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등장인물의 평정심을 어떻게 무너져 내리게 할 수 있는지, 소설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한다. 소설 속에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나 인물이 등장해야 한다. 보통의 삶에서라면 회피할 수 있는 일이 소설 속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5).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일상에서 영혼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법(p.165.)”을 설명한다. 이 장은 얼굴의 중요성에 대해, 등장인물의 얼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고 그 얼굴이 감정을 얼마나 신뢰할 만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의 얼굴의 상실과 진정성의 상실을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보며 인물의 얼굴이 소설을 통해 그의 영혼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안내자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얼굴에 대한 이러한 식의 주장은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서브텍스트의 역할과 상충하는 면이 있다. 서브텍스트란 결국, 인물의 배치와 행동, , 어조와 호흡, 소란을 피우는 것,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것으로, 한 인물, 하나의 이야기, 한 권의 소설 속 기저에 머무르며, 단순한 텍스트 아래 저 깊은 곳에 감춰진 진실과 내면, 즉 영혼의 세계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훌륭한 작법서이자, 언제든 펼쳐 들 때마다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안내 지침서이다. 내 경우, 나는 대단한 창작자도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과거 창작을 했던 과정을 되짚어보며 내가 어떤 부분에 주의를 기울였고, 또 어떤 부분에서 그러지 못했는지, 어떤 욕망이나 두려움이 내 소설 안에 내재해 있었는지에 관해 나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굳이 창작을 하지 않더라도 개의할 것은 없다. 이 책은 독서를 하는 이들에게 독법의 훌륭한 지침이자 예술을 접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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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백스터, 서브텍스트 읽기, 김영지 옮김, xbook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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