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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3] 산 자니까 따르리라_박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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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30 17:44 조회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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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3]

산 자니까 따르리라* 

박창용

 

 

집회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의자 없이 바닥에 십 분 이상 앉았다가 일어서면, 구부러진 채 그새 굳었는지 전신의 관절, 특히 척추와 고관절과 무릎이 펴지면서 아린다. 소리에도 민감하다보니 집회용 스피커에서 내뿜는 투쟁가 내지 선전 구호에 머리가 주뼛 서는 일은 예사다.

 

규모가 큰 집회일수록 더욱 큰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집회용 스피커 중 작은 것, 그러니까 사과박스만 한 스피커에도 쉽게 놀라는데 대형 집회에서 쓰이는 소형차 크기의 스피커에는 오죽하겠는가. 행여 자리를 잘못 잡아 임시로 합의된 흡연 구역 근처에 앉게 되면 담배 연기 세례에 머리가 다 아프다. 사람으로 빼곡한 집회 대오를 비집고서 일행 마중과 화장실과 내 자리를 드나드는 일은 또 어떻고.

 

햇볕에 얼굴은 익는 듯하고, 낮은 곳으로, 길바닥으로 내려앉는 먼지가 옷과 피부에 들러붙는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같은 하늘 아래지만 길에 앉는 일과 길을 걷는 일을 각각 다른 세상의 사건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먼지처럼 마음에 들러붙는다는 착각도 한다. 당장 집에 가서 뜨거운 물과 독한 술에 씻어내고만 싶다.

 

직업이니까 길바닥에 내 자리를 찾아 앉던 이 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넉넉한 선택권을 갖고 여건 되는 대로 집회에 참가한다. 물론 불편한 바닥과 커다란 소리와 기타 사항들로 투덜거리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려고 한다. 옳은 집회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지향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시위꾼에 입문할 무렵, 한 선배가 해준 말이 있다. 힘들면 안 나가도 돼요. 내가 주거나 받을 기운이 없으면 나갈 필요 없어. 나가선 안 돼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면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집회에 나갈 준비가 되었는가? 대답은 주로 이러하다. 투덜거릴 기운은 항상 있을 테니, 머리 하나 더 보태고 옳음에 대한 자부심을 얻어오면 되지.

 

 

*<임을 위한 행진곡> 중 후렴 구절 '산 자여 따르라'의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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