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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2] 경청_박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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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09 09:24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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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2]

경청

박창용

 

 

사람이 가엾게 느껴질 때가 두 가지 있다. 먼저 누군가가 입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밀어 넣을 때 - 주로 음식을 먹는 모습이다. 몸을 산 채로 유지하여 작동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가끔 다급하게 몸 바깥의 것을 입으로 삼키는 모습을 보자면, 그 치열함 때문에 내 속에서 가여운 마음이 인다.

 

다음으로, 누군가가 입을 통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쏟아낼 때. 주로 말을 하는 모습이다. 말이란 것이, 온전한 뜻을 끝내 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법이다. 과거의 말에 미처 담기지 못해 속에 잔뜩 쌓인 뜻들을 말로 쏟아내는 기회를 얻은 사람은, 자신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모른 채, 그저 말을 한다. 그 모습이 가여워서, 언제든 누군가가 말을 하면 열심히 들으려 한다. 어지간해서는 막지 않으려 한다.

 

나의 가여움은 누구든 나를 가여워 해주길 바라는 기대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내 말이 하도 안 먹혀서, 내가 열심히 너의 말을 들어줄 테니 너도 나의 말을 들어달라는 요구를 손쉽게 이루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실패한다. 나의 경청을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상대가 나를 가엾게 여기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워낙 오랜 세월 이러한 거래 실패의 역사를 겪다 보니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대 없이 일단 들으려 한다. 목적에 대한 의지는 상실하고 수단만 남은 셈이랄까.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더라도, 모든 말이 역겹게 들리는 순간이 있다. 지긋지긋해지는 것이다. 사람이 여럿인 술자리의 후반부를 비롯하여 대개 뚜렷한 방향이 없고 그저 대화라는 행위에 집중하는 상황에 이러한 순간이 주로 도사리고 있다. 어긋난 의미가 멋대로 뭉쳐서 말로 쏟아질 때 드러나는 반복성, 진부함, 무의미함, 무례함, 광기, 명령, 강요, 적나라함 등등이 관자놀이를 쿡쿡 찌른다. 반 정도는 아프다 말고, 반 정도는 같이 찌른다. 찌르고 찔리기만 하든, 서로 찌르든 이 얼마나 가여운 장면이란 말인가. 특히나 신이 있다면 얼마나 가엾겠는가.

 

다행인 점은 일상적으로 역겨운 것은 아니고 보통은 가엾고 흥미로운 와중에 조금씩 피로가 쌓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너무 피곤하지만 않다면, 여럿이서 소용돌이처럼 쏟아내는 대화에 함께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그러나 그중에는 어느 한 명은 역겹고 지긋지긋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시 내가 역겨움과 지긋지긋함을 느낄 때 신경을 써주겠지. 그러니까 우리 모두 서로를 가여워하길 바란다, 일단 로라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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