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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2] 근무_윤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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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02 05:58 조회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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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2]

근무

윤이삭

 

 

  골치가 아파, 골치가. 휴대폰을 켜지 말았어야 했나. 최 선생은 예배를 마치고 직장으로 향했다.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경비원이 들릴 듯 말 듯 전했다. 주말에 생긴 일은 알아서 처리하면 되지 않은가. 그것마저 못 한다면 월급은 무슨 배짱으로 받아 가는지. 불평을 하면서도, 경비원이 마땅히 부를 만한 사람이 자신 밖에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최 선생은 직장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헤아렸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내가 다른 이에게 맡기라 성을 냈다. 두 돌을 갓 넘긴 아들의 이마가 뜨끈했다. 예배를 보는데 축 늘어져 있어 졸린가 싶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병원부터 가봐야 할 것 같아.”

 

  아들이 아내의 품에 파고들며 기침을 해댔다. 최 선생은 아내에게 신용카드를 건넸다.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카드를 잡아챘다. 빳빳한 카드 모서리가 최 선생의 검지를 긁고 지나갔다.

 

  최 선생은 택시 기사에게 교육대학교로 가달라 했다. 기사가 알아듣지 못해 목소리를 높였다. 괜히 기사에게 성을 내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택시는 느릿하게 출발했다. 내년에는 꼭 관둬야지. 팀장의 얼굴에 참고 참은 사표를 내던져야지. 총장의 만행을 폭로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것도 좋을지 몰랐다.

 

  총장은 논의 없이 대학의 후문을 폐쇄했다. 후미진 후문의 경비가 어렵다는 명목이었다. 실상은 교내 기숙사에 학생들이 입주하지 않는 탓이었다. 학생들은 일거수일투족 간섭하는 기숙사보다 후문 바깥에 있는 오피스텔을 이용했다. 기숙사의 공실이 늘어나자 학교 재정에도 문제가 생겼다. 총장은 후문을 폐쇄하며 자신의 기지에 뿌듯해 했다.

 

  오피스텔 집주인들이 단체로 찾아온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입주를 앞둔 학생들이 한꺼번에 계약을 취소했기 때문이었다. 최 선생은 당장이라도 총장실 문을 뜯어낼 기세인 집주인들을 막아섰다. 9급이나 7급들은 재미난 소동이라도 구경하는 듯 했다. 집주인들이 침을 튀기며 최 선생의 가냘픈 몸뚱이를 드잡이 해댔다.

 

  대학에 도착해 카드를 찾는데 있을 리가 없었다. 현금은 천 원짜리 두 장이 전부였다. 기사에게 송금을 한다고 했더니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택시를 나서자 달콤한 향이 훅 끼쳐왔다. 대학 화단마다 심어진 금목서는 멀리까지 향을 징그럽게 뻗어댔다.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머리가 지끈할 정도였다. 총장이 임명되자마자 심어 놓은 것들이었다. 향이 날 때마다 총장이 가까이서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향이 느껴졌다.

 

  경비원이 최 선생을 발견하고는 서두르라 채근했다. 대체 무슨 일이람. 본관 입구에 여럿이 모여 있었다. 열 명쯤 되는 인원이 둥글게 머리를 맞대고 있었는데, 그들의 다리 틈으로 무언가 누워있었다. 최 선생은 누군가 뛰어내렸다 생각했다. 오래 우울증을 앓은 대학원생이, 상사의 괴롭힘을 못 견딘 교직원이, 학교에서 단가를 줄이라는 압박을 받은 식당 주인……. 절로 숨이 턱 막히고, 사체를, 내려다보며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기괴하게만 느껴졌다. 어서 이송을, 이송을, 이송을 해야 할 텐데. 혹시 결정을 내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설마 그게, ?

 

  최 선생은 뒷걸음질을 쳤는데, 경비원이 아랑곳 않고 연행하듯 팔을 잡아끌었다. 최 선생은 비명을 질렀다. 모여 있던 이들이 하나 같이 최 선생을 돌아보았다. 어서 와보라고 누군가 손짓을 하기도 했다. 사표를 내지 않은 자신이 미웠다. 면접을 보던 날이 스쳐 지나갔다.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던 자신을 뜯어말리고 싶었다.

 

  최 선생은 가늘게 뜬 눈으로 사체 앞에 섰다. 얼굴이 수염으로 뒤덮인 사내가 물었다.

 

  “이제 어쩔 거요.”

 

  그는 장총을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긴 총구가 하늘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구경하고 서있는 이들의 발밑에 핏물이 굳어 새카맸다. 이제 정말 어쩌면 좋단 말인가. 최 선생은 꿈에서 깨길 바라듯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흔들리는 눈앞에 사체가 차츰 정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한 마리의 멧돼지였다.

 

  “CCTV를 확인해보니 나무를 들이받고 있더라구요.”

 

  경비원이 상황을 설명했다. 도망친 새끼들을 뒤쫓고 있다고도.

 

  “, 경찰은 불렀습니까?”

 

  최 선생이 묻자 경비원이 구석으로 이끌었다.

 

  “총장님이 조용히 처리하라고 해서…….”

 

  경비원이 오랜 지인인, 후문 바깥에 살고 있는 포수를 불렀다고 했다. 포수가 건넨 손전등을 들고 화단을 이리저리 헤쳤다. 가까이 어미를 찾는 새끼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금목서가 내뿜는 향이 어지러울 정도로 이목구비를 통해 흘러들었다. 최 선생은 한참 기침을 토했다. 기침이 쉽게 가실 줄을 몰랐다. 허리를 굽히고 진득한 침을 흘리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미쳐 날뛰듯 부쩍 자주 울려대는 긴급재난알림이었다. 확인해보니 인근에 전염병 환자가 발생했다는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심드렁하게 닫자 다른 알림이 떠올랐다. 아내에게서 온 37통의 부재중 전화 알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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