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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1] 무제_박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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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6-18 01:40 조회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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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01]

무제

박창용

 

 

벚꽃이 피기 시작하고, 오랜 시간 굳었던 내 몸과 마음을 어느 정도 풀어서 주변을 살피니 새삼 또래들이 사는 모습이 보인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우여곡절 끝에 내디딘, 벗어나기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결단의 시기가 온 듯하다. 하기 싫거나 해야 하는 일은 최선을 다해 미루는 편인데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몰두하고 집중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을 잡아야한다. 평생의 화두를 결정하는 것이 올해 안에 또는 내년까지 수행해야할 일생의 과업이다.

 

중차대한 일이라 더욱 오랜 시간 결정을 묵혀왔으나 연령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생각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티 안 내고 눈치 보는 일에 도가 튼 나로선, 앞으로 한두 해를 넘겨서도 지금처럼 적당하게 대처하는 삶을 살다가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나쁘지 않은 삶이지만 원하는 삶은 아니다.

 

더 상세하게 고민해보자면 이렇다. 선택을 방기함으로써 얻은 자유를 누려왔지만 불안을 얻었다. 이 불안은 상당히 좋은 기능을 가졌는데, 바로 자유로운 삶의 양식 속에서 안주하는 태도를 용납하지 않고 수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내도록 생각과 실천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상태가 그러하듯 불안 또한 익숙해질 것이다. 그것도 체념의 형태로. 가능성은 점차 쪼그라들어, 적당하게 대처하는 삶에서 얻은 자유조차 아주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 게 틀림없다. 양면성이 없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그러니까 선택할 수 있는 기력이 남은 이 시기를 놓치는 것은 위험한 일일 테다. 지금의 직장에서 계속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달라지는 것이라면, 회사를 다니는 지금의 태도는 적당하게 대처하다 보니/어쩌다 보니 다니고 있다의 수준이고, 결정 이후의 태도는 나름의 선명한 뜻을 두고 다닌다가 될 것이다, 정도다. 지금 직장에서 끝까지 내 일을 해내거나, 경력을 토대로 관련 분야에서 쭉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는 동안 해보고 싶은 일 중 어느 것을 먼저 하겠노라 결정할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식탐을 부리고 술추렴을 일삼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좋아하는 동네에 식당이나 술집을 열 것이다. 허경영 씨가 운영하는 하늘궁을 콘셉으로 잡아 땅값이 저렴한 '인구 소멸 지역'에서 평화공동체를 꾸릴 것이다. 제주도에 직장을 얻어 모든 오름을 다 오를 때까지 쉬는 날이면 바깥을 나다닐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고향으로 돌아가 한 일 년을 읽고 쓰기에 집중할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척박한 지역을 찾아 하루 종일 나무를 심는 짓을 업으로 삼을 것이다. 대중의 심리를 교란하고 비생산적인 논란을 창출하는 글을 쓰는 협잡꾼이 되어 사람을 등쳐먹으며 살 것이다. 싹 적고 나니 죄다 극단적이다. 극단적이려고 여태까지 이 모양으로 산 것이긴 하지만서도.

 

적당히 대처하는 삶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단편적인 자유에 만족하며 지금처럼 계속 살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하는 일 또한 일이 년 사이에 끝내야할 것이다. 보류와 연기로 점철된 삶이 주는 안일함과 끊임없이 반목하고 결합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올해를 미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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