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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1] 우리집_윤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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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6-11 12:37 조회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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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1]

우리집

윤이삭

 

 

  낮 11시쯤이면 개가 찾아온다. 코가 납작한 하얀 개였다. 납작한 코가 자주 짓물러 드라이기로 잘 말려줘야 했다. 개는 분리 불안이 있어 언제나 겨드랑이에 파고들었다. 겨드랑이 사이에 끼인 개를 한참 쓰다듬는다. 개의 발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다가 눈을 뜨면, 기어이 하루가 시작된다.

 

  지난해 겨울, 나는 일본에 갔었다. 어느 문화재단에서 기획한 필드워크에 참여한 것이다. 34, 도쿄에서 시작해 남쪽 끝 이즈반도를 오가는 일정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공짜였다는 것.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대도.”

 

  함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 선배가 일러주었다. 일본 측 재단과 연계해, 청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 교류가 그 명목이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필드워크에 참여하는 포부를 A4 16장 분량으로 제출했다. 다행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선배의 이름은 보이질 않았다.

 

  “난 떨어졌나봐. 잘 다녀와.”

  선배는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듯 며칠간 술을 마셔댔다. 그 전에도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필드워크를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언제 또 여행을 갈 기회가 있을지 몰랐다. 시험 준비로 쌓인 우울과 열등감을 여행지에 모두 털고 올 작정이었다.

 

  필드워크는 유명한 어느 소설가의 생애를 따라가는 기획이었다. 소설가는 주기적으로 자살기도를 했는데, 마지막 5번째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가이드가 웃는 얼굴로 설명해주었다.

 

  “이 타마가와 상수(玉川上水)에서 소설가는 몸을 던졌습니다. 이 아래 부근에서 사체가 발견되었지요.”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소설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문학관, 집필 장소, 다른 자살기도 장소를 마저 둘러보니 3일째였다. 비로소 이번 여행이 처음의 다짐과 한참 멀어졌음을 깨달았다. 털어내려 했던 우울과 열등감은, 소설가에게 옮은 듯 오히려 그득하게 쌓여있었다.

 

  마지막 행선지로 야마나시현 미사카 고개에 있는 찻집을 찾았다. 소설가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다행히 소설가가 찻집에 머무른 동안은 정서적으로 가장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과연 후지산이 가까이 내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에 개운한 맛이 있었다.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가이드는 찻집이 소설가가 4번째 자살기도 이후 머무른 장소라 굳이 일러주었다. 몰랐다면, 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텐데. 마치 5번째의 비극으로 치닫기 직전의, 불온한 복선이 짙게 깔린 곳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얼른 이 여행이 끝났으면 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치매 걸린 노모를 모시느라 고향에 내려간 엄마였다.

 

  “엄마, 집에 왔어.”

 

  “잘 다녀왔니. 할 말이 있는데. 마음 단단히 먹고 들으렴.”

 

  할머니가 마침내 돌아가신 걸까. 정장을 어디다 두었더라.

 

  “찡이가 하늘나라에 갔어.”

 

  찡이는 코가 납작한 하얀 개다. 엄마와 함께 살 때 데려온 개였다. 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느라 엄마와 함께 고향으로 갔다.

  할머니는 개만 보면 소리를 지르고 거품을 물었다. 하는 수 없이 개는 바깥에 마련한 개집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점심을 챙겨주러 갔더니 코피를 흘리며 깨어나질 않았다고 했다. 우리집에 온지 17년 만에 개는 떠났다.

 

  낮 11시쯤이면 개에게 찾아간다. 개를 찾아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전날 저녁을 조금 부족하게 먹고, 13시간 쯤 잠을 청하면 만날 수 있다. 나는 개를 언제나 겨드랑이 사이에 끌어안았다. 겨드랑이 사이에 끼인 개를 한참 쓰다듬는다. 개의 발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다가 눈을 뜬다. 나는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상에 없는 어느 곳을 찾아 끊임없이 맴을 돈다. 그곳이 어디인지 나는 끝내 찾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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