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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01] 그들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_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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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6-04 09:38 조회2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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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01]

그들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

- 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을 읽고

김재홍

 

   

우리에게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존 스타인벡은 미국 소설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분노의 포도는 미국의 경제대공황과 겹친 흉년 때문에 서부로 이주해야했던 농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당시 이주민들의 생활상과 고된 노동의 감각을 빼어날 정도로 잘 묘사한 소설은 작가가 실제 오클라호마 주 이주민들 틈에 섞여 그들과 행로를 같이 한 것이 집필 동기이가 되었기에 그토록 생생하게 쓰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스타인벡 자신의 풍족하지 않은 삶, 목장과 공장을 돌며 일해야 했던 체화된 경험 또한 소설 전반에 걸친 서술에 탁월하게 녹아 있다. 작가 연보에 따르면, 분노의 포도1939년에 출간이 되었는데 2년 전인 1937, 분량은 짧지만 강렬한 소설 한 권이 출간된다.

 

생쥐와 인간 Of mice and men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에는 떠돌이 노동자 두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거구에 머리가 좋지 않아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는 레니, 그런 레니를 보살피며 불평을 해대지만 그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조지가 그들이다. 그들은 이전 농장에서 레니가 사고를 친 뒤 도망쳐 나와 새로운 농장으로 일하러 가는 중이다. 그들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레니는 손에 생쥐 한 마리를 들고 있다. 레니는 생쥐, 토끼, 강아지 등 예쁘고 보드라운 것이면 뭐든 손에 쥐고 만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힘 조절을 할 수 없는 탓에 항상 동물이 죽고 만다. 조지는 그런 레니를 나무라며 손에 있는 생쥐를 빼앗아 던져버린다. 이런 설정레니가 예쁘고 보드라운 것만 보면 잡아버리는은 후에 사건 발생과 소설 완성에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그들은 새로운 농장에서 생활하며, 언젠가 돈을 모아 집과 땅을 사겠다는 꿈을 꾼다. 그들은 우리 땅에서 우리 힘으로”(29) 먹고 살겠다는 환상에 대해 거듭 이야기한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던 그들이지만, 농장에서 잡역부 일하는 캔디 노인이 모아둔 돈을 보태 그 환상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조지는 한순간 고무된다. 환상이 현실로 한걸음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 농장주의 아들 컬리의 부인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혼자 있는 레니를 찾아오면서 상황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손으로 예쁘고 보드라운 것을 쓰다듬기 좋아하는 레니가 컬리 부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도중 그녀가 소리치자 당황해서 그녀를 죽이고 마는 것이다. 레니는 겁을 먹은 나머지 죽은 컬리 부인을 내팽개치고 도망쳐버린다. 그들의 환상은 깨져 버리고, 조지는 절망한다.

 

스타인벡이 이 소설을 쓰던 당시 미국은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허덕이고 있었다.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인간은 한낱 몸뚱이에 불과했고, 그들이 가진 나름의 계획과 환상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 거구의 레니가 거머쥔 생쥐처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아귀에 붙잡힌 인간의 운명과 계획은 영문도 모른 채 한 번 펼쳐지지도 못하고 어스러져갔던 것이다. 소설의 제목인 생쥐와 인간은 스코틀랜드의 시인 로버트 번스의 시 구절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생쥐와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

일이 제멋대로 어그러져,

고대했던 기쁨은 고사하고

슬픔과 고통을 맛보는 일이 허다하잖니!”

- 로버트 번스, 생쥐에게 To a mouse, 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제사

 

처음 제목은 ‘Something that happened(일어난 일)’였는데, 작가는 이 시구에 영감을 받아 제목을 생쥐와 인간으로 고친다. 대공황을 몸소 겪으며 사람들의 힘든 현실을 체득한 스타인벡이 생쥐인간이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어떤 정서를 느꼈을까. 아메리칸드림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거대한 기류 앞에 선 개인은 존재론적 위기의식에 함몰되어 가는 상황에서, 두 떠돌이 사내를 통해 그려내고자 한 절망적 현실이 생쥐와 인간의 모습으로 대비되는 것을 보고 한순간 희열과 함께 소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다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생쥐와 인간을 집필하고 출간한 그 해, 스타인벡은 차를 마련해 오클라호마 주 이주민들과 서부 이주의 여정을 함께 하고 이 경험은 2년 뒤 기념비적인 작품 분노의 포도출간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생쥐와 인간분노의 포도의 전신이 되는 셈이다. 생쥐와 인간에서 그려내는 땅을 향한 소망과 그 땅을 가지지 못하는 절망적 현실에 대한 감각, 거대하고 냉혹한 구조 속에서 바스러지기 쉬운 존재인 개인 등의 주제의식이 분노의 포도로 옮겨오는 것이다.

 

소설이 쓰인 약 80여 년 전과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은 놀랄 만큼 다른 모습이다. 이제는 변화라는 말 또한 무색해질 만큼 어딘가를 향해 급속도로 나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스타인벡이 살아 있다면 이런 격세지감을 앞에 두고 뭐라 말할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타인벡이 그려내는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은 세대를 뛰어넘어 우리의 근본 인식에 심오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다 설명하지 않았지만 생쥐와 인간에서는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 외에도 절망적 상황에서 지켜야 할 인간애와 연대의식 또한 탁월하게 그려진다.

생쥐와 인간은 분량이 길지 않고 서술 또한 어렵지 않아 한 번 잡으면 막힘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큼 묘사와 인물 간의 대사 또한 생동감이 넘친다. 조지와 레니 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어떻게 결정 지어질지는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 정영목 옮김, 비룡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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