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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먼저, 먼저_구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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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1-28 17:34 조회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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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먼저, 먼저

 

 

구설희

 

 

 

  아이들이 방문하는 서점에서 일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이들을 태우려 기다리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말했다. “휠체어를 탄 아이가 먼저 타야 한다는 걸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세요.” 아동 중에 장애인 아동이 한 명 있었다. 휠체어를 탄 아이가 가장 먼저 탔고 그 다음 비장애인 아이들이 탔다. 그 말이 꽤 인상 깊었다.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내가 먼저이지 않았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순서란 그렇게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너무나 당연하게 장애인은 뒤에 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장애인에게 또는 사회적 약자에게 배려하는 법을 몸에 익히게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장애인이 ‘먼저’ 타는 행위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먼저’라는 건 평등하지 못한 출발선을 필요한 누군가에게 앞으로 당겨준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이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고위 장관 임명에서 자녀의 문제가 불거져 알 수 있듯, 사건의 진위여부를 떠나 계급화 되어 있는 사회를 확연히 보여주었다. 부와 기회와 혜택을 ‘먼저’ 받는 계급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특별히 부모를 잘 두어서, 혹은 비장애인이라서, 특정 학교를 잘 나와서 먼저 어떤 자리에 오르거나, 먼저 혜택을 받거나, 사회적 지위를 얻기에 더 유리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먼저 그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되고, 그들은 항상 편리와 편익을 선취하게 된다. 장애인, 가난한 청년, 사회적 약자, 소수자, 동물, 자연 환경은 사회적 제도가 뒷받침 되지 않아, 가장 나중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기회의 평등을 말하곤 하지만 이렇게 아직 그것은 멀리 있다. 집중되는 부와 명예가 위에 선생님이 말했던 ‘먼저’ 가야할 사람에게 간다면 어떨까. 사회적 약자와 나눈다면 어떻게 될까.  

  이 거꾸로 된 세상에서 뭔가를 던져주는 동화책 한 권이 있다. 이자벨 카리에의 <아나톨의 작은 냄비>이다. 빨간 냄비를 끌고 다니는 아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아나톨이다. 아나톨이 끌고 다니는 빨간 냄비는 끊어지지 않고 줄기차게 그를 따라 다닌다. 길을 걸을 때도, 사다리를 오를 때도. 물론 그는 그것 때문에 항상 걸려 넘어지거나, 어디를 올라가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빨간 냄비는 장애와 같은 출발선이 늦을 수밖에 없는 원인을 말하고 있다. ‘너무 힘들 것 같은데. 그걸 어떤 사람은 매일 매순간 인식하며 다니는 거겠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도록 동화는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걸 보면 어딘가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아나톨이 바로 내 옆에 있는 것만 같다. 

  이 동화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빨간 구두를 신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등장한다. 보통 사람들은 아나톨을 피하거나 따돌리지만 그는 기다려주고 냄비를 넣을 가방을 만들어주고 아나톨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도와주고, 자신의 냄비도 내보이며 ‘너와 다르지 않아’라고 말한다. 무릇 그 특별한 사람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을 말하는 건 아닐 거다. 우리 모두 특별함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 텐데도, 쉬이 그런 사람이 되려하지 않거나, 그럴 기회가 없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특별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먼저’ 배려 할 순 없을까. 작은 냄비를 끌고 다니는 아나톨에게 우리가, 또 제도가 ‘먼저’ 다가갈 순 없는가. 기회를 먼저 그들에게 줄 순 없는가. 또 위에서 선생님이 아이들과 동료 선생님에게 말한 것처럼 교육하고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순 없을까. 배려하는 여유 또한 제대로 갖춰진 제도에서 나오는 것일 테다. 그림 동화에선 강조하고 싶을 때 흔히 세 번씩 외치곤 한다. 그러니 이렇게 외쳐도 좋을 것 같다. 아나톨에게 ‘먼저, 먼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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