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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_이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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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1-14 15:30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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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이기록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였지만) 1학년 때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왔다. 아버지의 직장이 이동됨으로 온 가족이 이사를 했다. 이사를 올 때의 파란색 이사짐 트럭을 타고 아버지와 함께 내려오던 기억이 선명하다. 불현듯이란 말이 어울릴 듯하다. 요즘 그곳에 가고 싶은 기분이 분다. 지금도 지역적으로는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낯익은 기억들이 다가온다. 그때 부산으로 이사하면서 처음으로 살던 곳으로 가 본다. 내 발걸음은 느릿하다.

 

골목에 들어선다. 이곳에서 어떤 기억이 다가올까. 2층의 단독주택 앞에서 그 기억의 흔적들을 되집어내고 있다. 추억할 것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워할 것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억을 끄집어낸다는 것이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란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을 갖게 된 계기는 떠오르진 않지만 그럴 때도 있는 것이다. 그때와는 다르다. 느낌이란 형체가 없기에 어디에서 필요한 마을 꺼낼지 짐작하기 어렵다. 일단 찬찬히 들여다본다. 내 시점은 오래전을 향해 있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다. 시간을 따라 나이를 먹고 돌아보는 일들 속에서 삶이란 참 바쁘게 제 스스로의 생명을 잘도 늘려나갔다.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 장석남, <옛 노트에서> 일부

 

그때 나는 어떤 빛들을 담아두고 있었을까? 어렸을 적 기억들을 하나 둘 떠올려본다. 그땐 친적들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같은 또래의 사촌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놀았다. 부딪혀 이빨이 나가기도 하고 여러군데 상처가 나기도 하면서 놀았다. 그래 잘 놀았다. 그렇게 한두 살 나이를 먹어가며 학교를 다니며 생활터전에 나오면서 각자의 삶이 달라졌기에 누군가는 이사를 하고 누군가는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 이제 만나기조차 힘들어졌다. 삶은 지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보면 낯선 기억들이다. 내게는 어떤 빛들이 남아있을까, 올해는 어떤 빛이 짙어졌으며 어떤 빛이 옅어졌을까.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 장석남, <옛 노트에서> 일부

 

삶은 항상 뒤를 바라본다. 뒤를 바라보는 이유는 앞을 바라보기 위해서일 테다. 그러나 어떤 초콜릿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초콜릿 상자같이 우리의 선택은 항상 모호함을 품고 있다. 지난 5개월 동안 다른 지역에서 시강의를 맡았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새로운 이야기를 해본 우연한 기회다. 앞으로도 삶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다시금 돌이켜 볼 시점이 있을 테다.

 

난 아직 골목에 있다. 골목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숨죽이고 앵두가 익을 때까지 천천히 지켜볼 무렵이다.

 

 

- 시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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