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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가는 길_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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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0-23 23:08 조회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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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인하

 

집으로 돌아왔다. 19개월 만이다. 모처럼 한국의 집에서 편히 쉬기 위해서였다. 태국에서는 쉰다고 한들 쉬는 게 아니다. 그 특유의 느리고 나른한 정서와 분위기로 태국이 수많은 여행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이라 한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은, 그 자체로 걸리는 것 투성이다. 음식이 걸리고, 말이 걸리고, 관습과 문화가 걸리고……집으로 가는 차표를 이따금 심심풀이처럼 찾아보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작 한국에 오니 애타게 기다린 아늑한 집은 온데 간데 없다. 대신, 여기저기 또 걸린다. 도로 위에는 한바탕 전쟁을 치르듯 앞다투어 내질러대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마치 바늘로 사정없이 온몸을 찔러대는 듯 하고, 거리에는 계속해서 숨가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정차역 없는 기차처럼 쉼없이 서로의 곁과 곁을 아슬하게 스쳐간다. 가게 안에서는 이유없이 단단히 화가 난 손님들과 억지 미소로 그들을 응대하는 주인들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피어 오른다. 

 

다시 돌아온 한국은 마치 작은 부딪힘에도 이내 타오르는 불꽃처럼 크고 작은 싸움들이 벌어질 것 같은, 매순간이 시한폭탄 같은 나날의 반복이었다. 가령, 밥을 한끼 밖에서 먹는다고 하더라도, 가는 길에 난폭 운전자를 만나 다투고, 주차를 하다 자리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주문을 하다가도 서비스가 엉망인 종업원 때문에 또 기분이 상하는 식이다. 

 

하지만 태국에서는 모든 게 정반대다. 한없이 느리고, 느리고 또 느리다. 그래서 도통 예측할 수 없다. 정해진 약속, 바뀌지 않는 계획이란 없다. 그래서 느리면 느린대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 채 그 흐름에 상응하는 것이 여기선 상책이다. 닦달하고, 재촉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갑갑함에 못 견뎌 저홀로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뛴다고 해도 그것은 해결책이기 보다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불씨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약속 시간이 예기치 않게 바뀌어도 참고, 일처리가 한참 더디더라도 참는다. 참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그래, 이곳이 바로 내 집이었다! 늘 무엇가에 쫓기듯 치열하게 하룰 보내는 한국인들 속에서 나는 다시 집을 짓는다. 진부한 타지 생활에서 한동안 그리워하던 포근하고 따뜻한 상상 속의 집을 지워내고, 떠나있는 동안 한켠 치워두었던 날카롭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늘 불안하게 서두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집을, 이제는 익숙하면서도 한편 낯선 나의 집을 다시 꺼내어 펼쳐놓는다. 

 

 

한 달 뒤, 나는 다시 느리고 조용하고 지루한 태국의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즐거웠니. 태국의 지인은 묻는다. 경기장에서 한바탕 치열한 경기를 치러낸 선수처럼 나는 가파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동안 얼마나 스스로를 재촉하고, 큰 목소리를 냈으며, 맹렬한 순간들을 내 집에서 보내어야 했는지를 들려준다. 그러자 지인은 고갤 갸웃거린다. 그런데 왜, 지금은 한국에서처럼 하지 않냐고. 어쩜 이렇게 나직하고 조용조용하게 이야기를 하냐며 신기해 한다. 어딘지 시종 화가 나 있는 사람들과, 한없이 느긋하기만한 태국인들의 사이를 서성이는 나를 바라 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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