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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7번 출구_임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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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0-14 10:52 조회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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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7번 출구

 

임은주

 

남자가 자신의 성기를 내 몸 속에 밀어넣었다. 수차례 앞뒤로 왔다갔다 하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잠시 멈췄다. 안 되겠다, 안 되겠다,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얼른 협탁에 놓인 콘돔을 집어 비닐을 벗겼다. 어두운 탓인지 잘 벗겨지지 않았다. 남자는 내게 뭐하냐, 며 거센 목소리로 물었다. 응, 콘돔 끼워야지, 살살 말했다. 나, 쌀 것 같애, 그리고 콘돔 끼면 맛이 안 난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 다 됐어, 잠깐만!, 하는 새에 남자는 턱 내 몸에 자신의 몸무게를 싫으며 엎어졌다.

 

삽입에서 뺄 때까지 피스톤 운동은 약 77회, 걸린 시간은 약 5분이었다. 머릿 속으로 초당 피스톤 운동 횟수를 계산했다. 코고는 소리가 들려와 옆을 보니 남자가 잠이 들었다. 정액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클리넥스를 겹겹이 겹쳐 질 입구에 갖다댔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클리넥스를 휴지통에 버렸다. 샤워를 했다. 부풀어오른 클리토리스 주변에 샤워기 물줄기를 갖다댔다. 쾌감은 음핵을 타고 들어와 가슴을 뚫고 바로 뇌로 직행했다. 이 남자와 사귀는 동안 삽입섹스로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몇 시간 눈을 붙이다가 메모를 남기고 콘돔을 챙겨 여관을 나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30분이었다. 화장을 못 했고 선크림도 못 발랐기에 햇빛이 부담스러웠다. 손으로 창을 만들어 태양을 피했다. 가까운 약국에 들어갔다. 사후피임약이요, 약사를 향해 주문했다. 50대 남성 약사는 나를 위아래로 훓어보았다. 네, 방금 여관에서 섹스하고 나온 사람이에요, 말하는 듯이 눈을 또렷하게 뜨고 눈길을 되갚아주었다. 약국을 나와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서 그 자리에서 피임약 몇 알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3개월동안 사귀었던 남자와는 헤어졌다. 섹스만큼 대화도 일방적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영어를 잘하는지, 군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버지 장례식에서 끝까지 남아 자기를 도와준 친구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하는 내용에 살을 붙이거나 깎거나 하는 내용의 무한반복이었다. 친구한테서 걸려온 전화에 '여자 만난다'고 얘기하며 낄낄거렸다. 전화를 끊고는 이 새끼는 음담패설 쩔어, 라며 한번 더 키득거렸다. 

이별을 했다. 사후피임약을 사기 위해 약국에 가지 않아도 된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카본을 수입하는 프랑스계 회사에서 비서일을 했다. 사장의 말을 수첩에 담았다가 영어로 번역하여 이메일로 보냈다. 손님이 오면 커피 심부름을 했다. 대표 전화가 울릴 때마다 전화기를 들고 '카본 로렌 코리아'입니다'를 외치다 보면 오후 7시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증산동에서 내렸다. 10분을 걸어 슈퍼 다음에 나오는 반지하로 들어갔다. 가구가 거의 없는 집이라 휑 했다. 블라우스 단추를 끌렀다. 브래지어도 풀었다. 아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브래지어와 젖꼭지가 스치는 순간 통증이 느껴졌다. 거울 앞에 섰다. 젖꽃판이 줄어들어 보라색이 되었다. 젖꼭지도 더 까매졌다. 기분 탓이려니 생각했다. 계산을 해보니 생리예정일이 넘은 지 이주일이나 되었다.
 
교대역 근처 약국에 들어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다음날 새벽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지하철역 화장실에 들어갔다. 옷을 끌어내리고 변기에 앉아 테스트기를 소변 줄기에 사선으로 갖다 댔다. 한 손으로는 옷이 내려오지 않도록 잡고 다른 손으로 임테기를 잡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숨을 참았다. 갑자기 남자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지웠던가, 안 지웠던가, 가물가물했다. 헤어진 남자에게 임신 사실을 말해야 할까, 임신이 되었다면 임신중지수술을 받아야 할까, 머릿 속 생각들이 엉겨붙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임테기는 또렷하게 두 줄이었다. 
 
강남역 7번 출구에 있는 '이진경 산부인과'에 갔다. 아는 언니가 차로 데려다 줬다. 수술 하고 바로 대중교통을 타기란 어렵다면서 마취가 깨어날 때까지 곁에서 지켜봐주었다. 의사는 질을 세정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질내까지 씻는 경우가 있는데 외부만 씻으면 됩니다, 마지막 말은 거의 안 들렸다. 마취가 아직 안 깬 듯했다. 몽롱한 정신으로 언니의 어깨에 기댔다. 나를 위해 수업까지 다른 선생한테 맡기고 차를 끌고 달려와준 언니에게 입을 달싹거려 고마워, 라고 말하고는 기억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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