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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6.선택, 무한 중의 하나_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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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26 10:00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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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6. 선택, 무한 중의 하나

 

현 수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평행우주에 대해서는 알리라 본다. 최소한 어벤져스 시리즈를 챙겨본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이야기꾼들에게 있어서 평행 우주는 왜 매력적인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돌이켰을 경우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없을 테니 그러하다.

어찌 보면 이야기의 가장 단순한 단위는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인물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의 누적이다. 극적인 이야기는 그 선택을 어떤 것으로 하는가에 많은 것들이 달려 있다. 오늘 아침 지하철을 탈지 말지 같은 선택은 일견 사소할지도 모른다(물론 이런 사소한 선택의 나비효과를 표현한 이야기도 넘치도록 많다). 혹은 그 선택이, 내 가족을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었던 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순간에 그의 손을 빌릴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극단의 모순일 수도 있다(영화 ‘21그램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무한한 평행우주를 들여다보는 존재에 가깝다. 낭만주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를 판단하고 글로 옮겨야 한다. 선택의 가능성은 무한하고, 언제 어떤 선택이든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는 물리학의 법칙을 무시하는 종류의 것밖에 없겠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장르에 따라 그마저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거기에 정답이란 없다. 이미 말했지만 아침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탈 것인가 버스를 탈 것인가로 수만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보통 작법서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면 쓸 가치가 없다는 쪽이다.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별 차이 없이 목적지에 도착한다면 그 선택은 이야기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 ,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선택지는 반드시 그 뒤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 맥락을 지녀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적절한 방향은 캐릭터를 잘 구성해서 그 캐릭터가 할 법한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독자들은 작가를 보지 않고 캐릭터를 보게 된다. 독자들의 시선에서 작가가 사라지면 이야기는 생생하게 살아나서 강력한 흡입력을 갖는다. 그렇게 되면 아주 대단한 주제가 없어도 사람들은 책을 읽은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그쯤 되면 이야기 속의 어떤 맥락이라도 건질 만한 주제가 된다.

여기에서 작가가 욕심을 낼 수도 있다. 자기가 원하는 주제를 향해서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 내용을 쓰는 식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인물이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어떤 행동을 한다면 대개는 독자들의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여기서 이럴 이유가 어디 있어?”라는 생각은 우리가 어떤 이야기 콘텐츠를 접했을 때 종종 떠올리지 않는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사람은 그 성향에 따라 움직인다는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이란 강력하다. 우리는 늘 그런 관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면서 살아간다. 화를 잘 내는 부장이 어느 날 아침에 화를 안 낸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늘 우울하던 사람의 표정이 환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의혹을 야기한다. “왜 저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늘 우울한 인물이 할 법한 선택과 늘 발랄한 사람이 할 법한 선택이 같을 수가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만약 그런 다른 선택을 한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 거니까 그 이유를 밝혀 주어야만 한다.

. 여기에서 자주 나오는 변명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말이다. 당장 뉴스 사회면을 펼쳐 봐도, 당신이 호러나 스릴러 작가로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사건 사고들이 현실에서 벌어진다. 몇십 년 전에만 하더라도 묻지마 폭행 같은 것은 이야기로 성립조차 할 수도 없었다. “별 이유 없이”, “그냥은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는 원인이지만 이야기에서만큼은 누구도 수용해 주지 않는다. 그건 무책임한 거다. 마찬가지로, “실제 있었던 일이야라고 하면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역시 무책임한 거다.

나는 이것을 허구적 리얼리티라고 부른다. 허구적인 이야기에서는 그 안에서 나름의 논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사람들이 허용하는 현실감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늘을 맨몸으로 난다는 것을 룰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하늘을 날다가 그냥그 능력을 잃는 것을 섣불리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심지어 당신이 쓸 글의 주제가 삶의 분절성과 비논리성이라고 하더라도, 조심스럽고 짜임새있게 접근해야만 한다.

무한한 선택이 다 가능하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차원에서 독이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는 그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이 환호할 만한 선택지란 훨씬 더 희소하다.

에세이라고 해서 다를까? 에세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정말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까 당신이 이랬다저랬다하는 걸 괜찮다고 생각할게라고 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에세이를 통해 보고 싶어 하는 인물(화자)이란 캐릭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비논리적으로 입체성 있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의 어떤 면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행위를 해 나가는 인물이다. “우울한 사람의 우울 극복기이든, “싱글남의 인생 생존기이든, “도전정신이 강한 청년이든, “무기력감을 이기려는 장년이든. 설득력을 잃으면 결국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 것은 에세이가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한 인물은 그 인물의 개성에 따라 선택을 내린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시 그 인물을 형성한다. 결국 이렇게 맞물리면서 첨예한 갈등과 고민 끝에 마침내 그 인물이 새롭게 증명된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킬 수도 있고, 변화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득력만 있다면 어떤 형태라도 독자들은 만족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신중히 고민할 것. 좋은 선택을 못해도 되지만, 현실적인 가능성만 두루뭉술하게 따라가며 근거가 없는 선택을 내리지는 말 것. 무한은 독이다. 최상은 그 중 단 하나라고 생각하고 골라야 한다. 우리 인생에 단 한 번의 선택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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