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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4.주제론_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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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7-31 14:10 조회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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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4. 주제론

현 수

 

주제란 독자가 책을 읽는 이유이다. 혹은, 아무런 이유가 없더라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에 얻어갈 수 있는 그 무언가이다. 글을 쓰는 목적 또한 이것이다. 주제가 없는 글이란 없다. 제아무리 실험적으로 쓰더라도 주제는 있게 마련이다. 아무에게 아무 것도 전하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하면, 아무 것도 전하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이 결국엔 주제인 셈이다. 주제가 없다면 그것은 그냥 파편적인 문장들의 배설이지 글로 완성될 수가 없다.

주제는 좋은 글을 만들어 주는 핵심이다. 그런데 주제라는 요소가 글의 성립에 있어서의 기본이라면, 어떤 글을 더 좋은 글로 만들어 주는 것은 주제의 유무 이상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제를 중심으로 글의 완성도를 논한다면 두 가지 방향을 거론할 수 있다. 하나는 주제가 그 자체로 좋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하게 되면 나는 주제에 대해 보통 이별한 경우에 빗대어 설명하곤 한다. 말하자면 이러하다. 사귀던 사람들이 이별하면 보통 그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대부분의 경우 갓 헤어졌을 때엔 내 잘못이 5개 정도 되고 상대 잘못이 537개쯤 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변덕이 죽 끓듯이 하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아냐, 내가 다 잘못한 거였어했다가 다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아니지, 걔가 그렇게 만든 거잖아하게 된다. 오늘 생각한 잘못은 내일 생각하면 또 다른 연유에 의해 뒤바뀐다. 당장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안일한 자기 위로의 결과물임을 눈치채게 된다. 그러면 더 진짜 이유를 찾아내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 헤어짐 이후로 더 나은 만남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좋은 주제란 이런 것이다. 좋은 주제는 반복되는 부정을 통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그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나타난다. 보통 작법서에서는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은 상투적인 것이다라고들 표현하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이라 보면 된다.

좋은 주제를 도출하려면, 혹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하려면 사고의 연마밖에 달리 정도란 없다. 이걸 누구나 한다면 세상에 걸작이란 수도 없이 나왔을 터이니, 당연히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은 보통 알 만한 수준에 다들 비슷하게 가 있다. 그러니 공감대를 끌어내는 글은 비교적 쓰기가 쉬운 글이다. 그것이 나쁜 글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단지 공감대를 끌어내는 정도에서 머무르는 글이라면 그 글의 수명 역시 그 정도에서 머무를 따름이다. 세월이 흘러도 널리 읽히는 명작들은 어려운 주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가 세상에 만들어지기 전까지 누구도 쉽게 말하기 어려웠던 어떤 존재들을 밝혀내었을 따름이다.

 

제아무리 좋은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지언정 그것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면 결국엔 무용지물이다. 글을 쓸 때 작가로서 20여 가지의 의미를 생각했다고 한들, 독자들이 반의 반도 모른다면, 그래서 독자들의 생각이 그 글을 읽기 시작하는 지점과 다 읽은 지점에서 차이가 없다면 결국 그 책은 꼭 읽지 않아도 되는 글이 되는 셈이다.

내가 미사여구가 많고 수식이 찬란한 문장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 대개 주제가 빈약하다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문장에 눈을 돌리게 만들려는 의도, 내지는 문장이 아름답다면 주제도 아름다울 거라는 착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도 있지만(현학성을 지적하는 블랙코미디류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은 저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릴 때다. 당신이 쓴 글을 독자들이 읽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당신이 주제를 있는 그대로 문장에 써도 독자들이 그걸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도박에 가깝다.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를 작가가 나눠서 의도와 비의도를 구분하고 작가가 숨긴 대단한 뜻을 찾아내기를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오만이다. 제대로 된 주제도 없이(있을 경우에도 적지 않게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만들어 내는 미문(美文)은 기능상 비문(非文)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잘 드러낼 것인가? 그건 글을 잘 쓰는 수밖에 없다. 허나 공식도 정답도 없는 글쓰기에서 잘 쓴 문장의 기준이 있을 리 역시 만무하다. 다만 글 하나하나에 걸맞을 만한 무언가는 존재한다. 그 무언가는 보통 글을 쓴 본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 작가는 자기 글의 주제와,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모두 알고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글쓴이와 같은 눈으로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글쓴이에게 일깨워 줄 수 있는 사람이 독자다. 그런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바로 합평이다.

이것이 내가 합평을 하는 이유이자, 내가 생각하는 좋은 합평의 기준이다. 좋은 합평은 서로가 독자가 되어 상대의 글을 읽어 주고 그 글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가 드러내지 못하는가를 봐 주는 것이다. 우월감을 등에 업고서는 상대 글을 낱낱이 분해하고 찢어 흠을 찾아서 이딴 걸 글이라고 가져오다니 한심하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혹은 띄어쓰기 내지 오탈자 같이 나중에 고쳐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사소한 것들을 목숨걸고 찾기 위해 합평에 나가는 게 아니다. 물론 비판할 것은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합평의 전제는 진전에 있어야만 한다. 좋은 글이란 주제를 제대로 드러내는 글이라고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좋은 합평은 글이 좋은 글인지 아닌지를 봐 주는 것이어야만 옳은 건 당연하지 않은가.

 

쉬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좋은 주제를 만들기도, 그걸 제대로 전달하기도 다 어렵다. 너무 추상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해 버리고 끝낼 것들이 아니니 한 번은 쓴 말로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큰 범주에서 좋은 글에 관해 다소 막막하게 정리를 했으니니, 이제 그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 좋은 글이 지닌 요소들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언제나처럼 소설에 좀 더 잘 적용되는 이야기들이겠지만, 그 이외의 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것을, 나는 인물과 사건 위주로 이야기하겠다. 인물과 사건이란 에세이로 따지자면 화자, 즉 글쓴이와 경험, 즉 글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건 다음 글에서 풀어 가도록 하겠다.

 

  

 

- 글을 썼던 사람. 앞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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