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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레지스탕스_임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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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7-25 12:50 조회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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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레지스탕스

 

 

임은주

 

 

사람들이 나보고 가정폭력 생존자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생존자란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었지만 살아남은 자라는 뜻일 거다. 아직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고통을 직면하는 대신 기억 어딘가로 밀어 넣었다.

생존자인지 사자인지 잘 모르겠다. 살아도 살지 않는 듯한 삶이기는 하다. 최소화된 자아로 살고 싶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갈취하는 따위의 일은 안 하려 한다. 인간이 인간을 때리는 일에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종이 동물종을 때려죽이는 구조를 견딜 수 없다.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닭의 생애주기를 단축시켜 인간의 입으로 가져가는 일의 부조리를 견딜 수 없다. 살생이나 폭압 없이 살고 싶다. 플랑크톤만 먹고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기 위해 식물을 입에 대지만 그마저도 송구스럽다. 먼지와 같은 존재가 식물의 생명력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집 앞마당은 어린이 장사꾼들로 북적였다. 내 친구 정수도 살모사 한 마리를 움켜쥐었다. 정수는 무서운지 자꾸 눈을 깜박거렸다. 열한 살 영민이 오빠는 백사 두 마리를 들고 발을 벌리고 서 있다. 아빠는 동네 아이들한테 뱀을 샀다. 한 마리당 10원을 쳐 주었다. 

 

 

아빠는 살모사와 백사를 병에 집어넣고 소주를 부어 뱀술을 담갔다. 밥 먹을 때마다 뱀이 신경이 쓰였다. 고개를 들고 선반에 놓인 술병을 보았다. 백사 한 마리가 발버둥을 치며 제 몸을 비튼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백사는 허연 거품을 품어냈다. 아빠는 저녁을 먹을 때마다 뱀술을 따라 마셨다.

아빠는 그 뱀술을 드시고 얼마나 많은 연인들을 만족시켰을까? 동물의 살덩어리를 씹어 삼키는 그 목젖을 지켜본 적이 있다. 꿀꺽, 소리를 내며 고기는 목젖을 통과하고 있었다. 아빠가 성이 날 때면 목젖이 불뚝하게 부풀어 올랐던 장면을 기억한다.

아빠가 우리집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술 먹고 화난다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없는 저녁은 어떤 삶일까? 그 사람이 없었다면 밤마다 검푸른 보리밭길로 도망칠 필요도 없었다. 그런 분노가 없었다면 엄마가 마루 아래로 기어들어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우리 남매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지 않아도 되었다.

뱀술을 먹는, 누군가의 살덩이를 먹고 몰매질하지 않는 삶을 원한다. 레지스탕스가 되기로 했다. 12년 전 고기를 끊었다. 도축을 당하거나 착유기에 우유를 착취당하는 동물들의 소리를 더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존재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기, 생선, 달걀, 우유를 먹지 않는다. 다른 생명을 밟고 일어서지 않기로 결단했다. 삶의 방식을 비건으로 갈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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