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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는 그림판8> 있(었)지만 없는(없었던) 듯한 소리_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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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7-18 10:09 조회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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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는 그림판 8>

 

()지만 없는(없었던) 듯한 소리

문진우 사진전-남포동 불루스(2019.07.12.-08.31. CAFE F5.6)

 

신용철_민주공원 큐레이터

 

 

문진우는 사진가이다. 사진작가라 부르지 않아도 싫어하지 않는다. ‘사진작가라고 불러주길 원하는 이를 나는 만나지 않는다. 문진우는 사진기자였다. 그의 사진에는 기자의 발이 달려 있고 땀이 묻어 있다.

첫사랑은 부산우체국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나는 중앙동 뒷골목 햇빛 아래 널브러졌다. 그녀의 이름을 말할 순 없다. 부산우체국 지하에 갤러리가 있을 줄 몰랐다. ‘CAFE F5.6’은 갤러리 카페이다. 1980년대 남포동을 담은 익숙한 사진 40여 점이 갤러리에 앉아 있다. 낯익은 남포동 언저리 정경이다. 사진 속 거리를 떠다니는 사람들이 만난 남포동은 낯설다. 사진가는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장소와 인물을 지켜보고 있다. 문진우의 카메라는 있는 듯 없는 듯 거리를 함께 떠돌며 거리가 되었다. 사진틀 안에 문진우의 카메라가 숨은그림찾기처럼 도사리고 있다.

사진가 문진우 형이랑 소주를 한 잔 하기로 하고는 3년이 지났다. 그동안 때때로 곳곳에서 만나면 서로 간절한 마음으로 소주 한 잔을 눈으로 그려보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어느덧 나는 통풍 환자가 되었다. 술은 이제 그만 묵고, 남포동 극장가 언저리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 빨면서 거리를 함께 들여다봐야겠다.

 

* 문진우 사진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2016년 전시글과 포스터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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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없는(없었던) 듯한 소리

 

 

귀를 불러내는 눈길

 

늘 그렇듯이 좋은 작품은 감각들이 짜고쳐서 만들어낸다. 보여주되 귀에 속삭이거나, 들려주되 눈꼴을 불러낸다. 뻔한 작품은 눈에게만 보여주거나 귀에게만 들려준다. 감각의 언덕을 넘어선 작품은 여러 가지 감각으로 제 말의 몸매를 만들어낸다. 눈은 소리길에 얹혀 제 목소리를 얻고, 귀는 눈꼴을 입어 제 차림새를 갖춘다. 창작자는 갖가지 차림으로 말하는 이다. 감상자의 눈과 귀를 꼬셔 마음의 꼴을 불러내는 이다. 예술은 마음을 불러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상실시대 : 있지만 없는 듯

 

상실시대에서 갖가지 시대와 사람들은 거리를 바탕으로 만난다. 1985년에서 1995년 사이에 작가는 신문사 사진기자였다. 현장을 낚아채는 기자의 눈빛과 거리를 걸어가는 서민의 눈길이 뒤섞여 거리의 소리들을 만들어낸다. 시대와 장소가 만나는 곳에서 웅크리고 쪼그리고 나뒹굴어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없는 듯여겨진 목숨들이다. 날선 눈빛과 낯선 눈길이 만나는 자리에서 그들은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 있다.

갖가지 사람들이 거기 그곳에 있다. 영화 간판 아래에서 길거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 계단이나 통로에서 구걸하는 사람, 건물 담벼락이나 길모퉁이에 기대거나 걸터앉거나 주저앉은 노인들, 기지촌 여성들, 표정 없는 아이들이 모여 시대의 상을 이룬다.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이 내는 목소리들이 인물 언저리의 사물, 풍경의 정보들과 만나 더욱더 또렷해진다. 인물과 사물, 배경이 대비, 합작, 공모의 과정을 거쳐 시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토피아(utopia)없지만 있다고 믿고 싶은 곳이다. 디스토피아(distopia)없었으면 하는 곳이다. 시대는 유토피아의 전망과 디스토피아의 성찰로만 포착할 수 없다. 유토피아의 전망과 디스토피아의 성찰 사이에서 거리의 상들은 분열한다. 카메라는 이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다른 곳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만들어놓았지만 완성하지 못한 이 말을 있지만 없는 듯 여겨지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배경과 사물들이 주는 정보 속에 던져져 있는 인물들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는 존재들이고 눈여겨보아야만 보이는 존재들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살지만 다른 곳에 있어, ‘있지만 없는 듯 여겨지는존재들이다.

작가는 이미 1993년 이런 사진들을 모아 <불감시대>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느끼지 못하는 시대이다.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아 느껴지지 않는, 느껴지지 않아 공감할 수 없는 존재들을 불러내어 거리의 목소리들을 만들어내었다. ‘다른 곳에 머물던 목소리들이 사진가의 사진틀 안으로 들어와서 비로소 같은 곳의 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한다. <불감시대>가 놓인 자리에서 20년이 훌쩍 지난 자리에 <상실시대>가 놓여있다. ‘불감을 예술의 눈으로 낯설게 알아차리게 했던 사진들이 상실의 시대’,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인가?

 

내 마음 속 다큐 한 장 : 있었지만 없었던 듯

 

내 마음 속의 다큐 한 장은 사진가 제 마음의 속내이다. 1970년대에서 2000년대라는 긴 시간 동안 쟁여두었던 제 눈길을 드러낸다. 사라지는 것들이 내는 목소리가 눈길을 불러내었다. 페이스북에서 미리 여러 점을 끄집어내며 짧은 글을 덧붙였다. ‘있었지만 없었던 듯여겨지는 것들이 내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눈길을 불러내어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면 사진이 아니어도 좋다. 예술이 아니어도 좋다.

<상실시대> 연작들이 사진기자의 날선 눈빛과 거리의 낯선 눈길이 만나 시대의 창을 이루었다면, <내 마음 속 다큐 한 장> 연작들은 30년 동안 부산, 경남 언저리를 발로 만나고 손으로 어루만져 빚어낸 한국 현대생활사의 속살들이다. 시대가 머무는 거리, 동네사람들 사연이 깃든 골목, 믿음과 삶이 하나였던 갯가, 삶이 아로새겨진 물가 언저리들에 오랫동안 마음을 주었다. 마음이 다가가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다보니 사람들, 사람들의 삶과 터전들이 오롯이 사진가의 속내가 되었다.

한 때 사진가의 몸과 함께 있었던 사람, , 터전들이 이제는 사라져가고 있다. 사진가 문진우 작업의 큰 축 하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산복도로, 매축지, 물만골, 하야리아 부대를 다루었던 그의 작업들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이 모여 살아있는 것들의 몸을 이룬다. 사라지는 것들을 만나는 발들이, 어루만지는 손들이, 들여다보는 마음들이 모여 이 자리에 살아가는 몸들의 뼈를 만들고 살을 빚어내었다. ‘있었지만 없었던 듯여겨지는 것들에게 숨을 불어넣고 이들의 숨소리를 골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만드는 일은 사진가 문진우의 숙명이다. 사진가의 마음 속 다큐 한 장, 한 장들이 낱낱이 지금 여기로 날아와 재개발과 보존의 언덕 사이를 오가는 현장이 되었다. 오늘도 사진가는 삶의 현장에 있다.

 

세션카메라 / 싱어송카메라

 

어머니는 사진을 찍고 싶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사진기는 좋았다. 나는 사진이 좋았다. 사진동아리에 들어갔다. 어느덧 사진기자가 되었다. 거리에서 사진기가 되었다. 기자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었다. 부른 이가 받고 싶어 하는 사진을 잘 뽑아내었다. 사진기는 나의 밥이다. 사진기로 바람을 피우고 싶다. 거리의 사람들을 들여다보았다. 바다를 깊고 푸르게 맛보았다. 마네킹을 눈으로 홅으며 사람의 삶을 그려보았다.”

사진가 문진우는 세션카메라이다. 행사나 프로젝트 현장에서 그의 카메라는 제작자의 틀 안에 한껏 제 몸을 맞춘다. 그에게 하지 못할 갈래는 없다. 거래와 댓거리가 잦은 강호에서 그의 카메라는 빛나는 칼빛 날카로운 칼날이다. 사진기자의 현장에서 갈고 닦은 그의 사진은 행사 사진의 품격을 높였다. 제작자의 틀 안에서 작업하되 틀 안에서 머물지 않고 제 사진의 눈빛과 눈길을 빛나고 날카롭게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제작자의 틀 속에서 협업자들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사진가는 연출자의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스스로의 자리에서 서있되 연출자의 마음으로 작업을 하는 이가 곧 마에스트로이다. 마에스토로는 홀로 있어도 빛나고 함께 있어 더욱더 빛난다.

사진가 문진우는 싱어송카메라이다. 제 눈빛으로 불러내는 눈길을 보듬고 매만지는 손길이다. 손길 같은 눈길이 빚어내는 소리들이 그의 노래이다. 그의 노래는 때론 들여다본 우물 안에서 울리며, 깊고 푸르게 목구멍을 타고 넘으며, 삶의 돌기 사이를 헤집는다. 1993<불감시대> 이후 마련한 숱한 개인전에서 사진가 문진우는 갖가지 갈래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사진기로 피운 바람들의 소리가 때마다 낯선 악기 속에서 낯선 갈래의 음악이 되어 나타나곤 했다. 문진우 사진의 갈래를 무엇이라 하나로 말하기 어렵다. 문진우 사진의 갈래는 곧 문진우 사진이다. 그의 카메라는 세션과 싱어송라이터 그 어름에서 만나고 춤추고 노래한다. 그는 카메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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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우-남포동불루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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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불루스 전시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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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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