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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그리기_구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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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7-04 12:59 조회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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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상화 그리기-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구설희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건, 내가 당신을 좋아하지만 오래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이유, 당신을 존경하지만 이 자리가 빨리 끝나길 바라는 이유에 대해서였다. “매력의 기준이 정의롭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력적인 사람에게 끌린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외관상으로 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날 때 그의 외관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는 덜 매력적으로 느낀다. 단지 성숙하지 못한 의식 탓으로 돌렸었는데 실은 “매력 불평등”의 문제였다는 건 겨우 내가 애쓰고 의식해야 불평등한 무의식에 대항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될까. 당신을 평등하게 보려고 해도 무의식에는 그런 것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인문학을 공부하고부터 외모, 외관을 의식하는 건 외모지상주의에 굴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외모에 초연해졌다고 착각했나 보다. 

 

  저자는 법과 윤리로 일상의 규범이 잘 정비되어 있다 해도 완전한 매력차별금지(매력에 따라 차별하지 말 것)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법으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체계가 잘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개인에게서 매력에 따른 차별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저자는 상대에 대해 초상화를 그릴 수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사진처럼 그 사람의 한순간의 모습이 아닌 초상화처럼 긴 시간 그의 매력과 행동, 생각 등이 눈에 담겨야 한다고. 하지만 이것도 빈번한 상대와의 교류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결국 비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장애인과 더 자주 어울려야 하며 교육, 시스템을 통해 “아름다울 기회”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매력 불평등의 문제에서 조금 안도한 것은 내게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초상화를 잘 그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초상화란 그의 배려와 긍정적인 힘, 단정함, 용기 같은 것들이 그의 몸과 더불어 내 마음에 쌓인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외관 안에 있는 더 다층적인 면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노력하기, 그 모습 쌓기를 주저하지 말기, 외관만 보고 그를 판단하지 않기 같은 실천적 방법을 실행할 수 있다는 여지가 내게 남아 있다. 

 

  작가 김원영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이며 사회학과와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법과 관련한 일화가 많이 담겨있는데 ‘잘못된 삶’이라는 판결이 기억에 남았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부모가 산부인과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원고는 각각 부모와 아이였다. 아이 편에서는 “당신의 실수로 내가 태어났으니 그 손해를 배상하시오”라는 말이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삶을 손해라고 할 수 있을까. 손해라고 생각되는 삶이 존재할까.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손해일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질문 앞에서 알 수 있는 건 어찌됐든 일반적으로 ‘장애’는 손해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존재’에 대해 잘못된 삶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가. 잘못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차별을 불러왔고 구획, 구분함으로써 ‘잘된 삶’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은 그렇게 가치판단 할 수 없다. 오히려 저자는 “‘잘못된 삶’이라고 규정된 사람”들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수용하는지, 사회가 그것을 수용하도록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를 예를 들어 보여준다(장애인 시설 구비, 이동권 보장 등). 하지만 이렇게 “권리를 발명”하고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고 해도 법과 사회는 그들의 고유성과 저자성, 서사가 있을 것이란 사실을 제거한다. 장애등급제 폐지도 사람을 등급으로 매기는 것에 거부하여 나온 것이듯 말이다.  

 

  “고유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인간은 흐릿하게만 기억되고, 번호나 기호로만 존재하며, 특정한 장애나 성적 지향, 성별, 인종 등으로만 호명된다. 나라는 사람은 존중받지 못할 때는 그냥 한 사람의 장애인이지만 존중받을 때는 장애를 가진, 그리고 그 밖에 이러저러한 특성과 이야기를 가진 김원영이 된다.”는 말을 기억한다. 기호화된 대상으로서의 그가 아니라, 서사와 이야기가 있는 그를 궁금해 하고 그 이야기와 더불어 초상화 그리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앞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신은 상대의 초상화를 잘 그리고 있나요? 당신의 붓에는 저이의 어떤 색이 묻어 있나요? 잘못된 삶이란 없음을, 아름다울 기회는 평등해야 함을 당신은 ‘초상화 그리기’를 통해 증명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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