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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風葬)_이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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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709회 작성일 19-06-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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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風葬)

이기록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

- 황동규, <풍장 1> 중에서

 

죽음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나 종교학자들, 연구가들은 죽음에 대해 수없는 연구와 가치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대부분 죽음에 대한 태도는 개인의 심리적 성숙도와 성격에 달렸다고 한다. 삶의 한계를 인정하고 죽음도 삶의 연속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인다면 죽음은 우리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장례식장에 가야할 일이 많아졌다.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들이 당연히 많아질 수밖에 없지만 올해 들어 벌써 10여회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도 한 지인의 장례식장에 들렸었다. 돌아가신 분의 삶과 죽음을 무게로 잴 수는 없겠지만 남은 사람들이 그분의 삶과 죽음을 되새겨보는 일은 슬픔을 겪어내는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도 어머니와 친한 친구의 죽음을 몇 년 사이에 겪다보니 이런 일들을 겪게 되면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까. 일반적으로 죽음은 삶의 연속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마지막이라 인식된다. 그래서 대부분 궁극적인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고통 속에 있던 사람에게는 축복받은 구원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모임을 함께 하던 지인의 장례식장 두 곳을 다녀왔다. 다녀왔다는 말 자체가 모순되는 말일수도 있지만 두 곳의 풍경은 새삼 여러 가지 의미를 돌이켜보게 한다. 두 분 모두 연세가 많은 상황에서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방문한 시간에 따라 슬픈 감정을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진정 정도가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한 곳은 무거운 정서가 더 많았고 다른 한 곳은 무겁다기보다는 다른 정서가 더 많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죽음을 대하는 상주분들의 태도가 달랐던 듯 싶다.(무엇은 옳고 그르다의 시각은 전혀 아니다)

 

원래 죽음은 삶과 이어져있는 삶의 과정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시대는 죽음을 과정이라기보다는 삶과 단절된 다른 시기로 이야기한다. 그렇게 과정인 죽음은 삶과 떨어져 멀어졌다. 그래서 무덤들은 도시에 속하기보다 그 외곽으로 밀려나 삶과 공존하지 못하고 밀려나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병원 장례식장의 의식 속에서 삶과 단절되는 과정을 겪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인간의 한계 수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죽음뿐만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부분이 한 켠으로 밀려나고 있는 듯한 현실에서 나의 죽음은 어떨까 그 순간을 상상해본다. 고통 속에서 아니면 편안하게. 더 구체적인 상상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죽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의 시 제목처럼 바람에게 묻혀 풍장하고 싶다. 바람처럼

 

조금 별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며칠 전 멕시코에서 두 살 배기 딸과 아버지가 서로 꼭 껴안은 채 익사한 모습이 공개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미국으로 불법입국을 시도하다가 급류에 휩쓸렸는데 결국 비극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그 공간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몇 권력자의 결정으로 빚어진 비인간적인 결말을 잇달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인간적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흔한 일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너무도 흔한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합리적인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죽음은 더 이상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

 

- 시 쓰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