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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 숨이라는 이름_박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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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16 10:41 조회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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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라는 이름

김숨 소설집국수를 읽고

 

박정웅

 

 

숨쉬기처럼.”

어떤 작업의 난이도가 매우 쉬울 때 사람들은 이 같은 비유를 덧붙이곤 한다. 별다른 의식 없이, 얼마든지 숨을 들이쉬고 내쉴 수 있다는 사실은 이 호흡의 비유에 든든한 근거가 된다. 말 그대로 인간에게 숨쉬기란 쉽고 어렵고의 판단이 뒤따를 필요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니까. 다만 나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게 되기까지의 배경을 유념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소간 비약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으나 여태껏 인간이 숨을 쉴 수 있는 행성으로 확인된 곳은 이 너른 우주에서 단 하나, 지구뿐이니까. 태양이 지금보다 지나치게 뜨겁거나 뜨겁지 않았다면, 혹은 태양이 지구와 지나치게 가깝거나 멀었다면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인간이 숨을 쉬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숨쉬기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자유에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말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나는 지금껏 자유를 너무 쉽게 여기는 자유를 심심찮게 보아왔다. 결코 책임질 수 없는 언행 뒤에 이게 내 자유다, 하는 식의 자유. 그런데 내가 아는 자유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와 말미암을 유()로 이루어진 이 낱말은 글자 그대로 풀이했을 때 스스로에게 이유가 있음을 뜻한다. 달리 말해 자유로운 언행의 까닭은 주체에게 있다는 것. 언제나 까닭은 책임을 수반하므로, 자유로운 언행은 최소한 나 자신을 걸었을 때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게다가 신에게서, 그리고 왕에게서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쟁취하기까지 흘린 핏방울을 결코 측량할 수 없음을 감안하면 자유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숨쉬기처럼.

김숨의 소설집, 국수를 읽고 나서, 뜬금없이 내가 이처럼 숨쉬기와 자유에 대한 장광설을 펼쳐놓는 것은 바로 김숨의 소설들이 숨쉬기처럼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옥타비오 파스의 말처럼 단편소설 양식을 궁극적인 시의 한 형태로 본다면 작가 김숨은 능수능란한 자유시인이다. 표제작국수가 그러했고, 이어진 옥천 가는 날이 그러했으며, 마지막 장에 실린 대기자들이 그러했다. 소설 속 그의 언어에서 드러나는 호흡이나 자유가 언뜻 보기엔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이나 규범을 벗어나 있어서 일부 독자에게는 무분별하게, 쉽게 씌어진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그가 글쓰기의 어려움과 책임을 절실히 통감하면서 작품을 써 내려갔을 것이라 믿는다.

먼저 국수는 시작부터 이게 평범한 소설은 아닐 것임을 예감케 한다. 화자는 시종일관 경어체를 유지하면서 반죽을 치대는 시간부터 국수를 만들어가기까지의 묘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와의 기억을 병렬한다. 자칫 잘못하면 이러한 글쓰기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할 위험성이 다분한데도 그는 뚝심 있게 밀어붙임으로써 소설과 장시의 경계를 허무는 유니크한 미학에 가 닿는다.

이어지는 옥천 가는 날은 언급한 세 작품 중 외관만 놓고 봤을 때 비교적 가장 소설다운 작품이다. 자매 관계인 정숙, 애숙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과 함께 앰뷸런스를 타고 옥천으로 간다. 옥천은 어머니의 고향으로 장례식장이 예약돼 있다. 하필이면 휴일이 겹쳐서 서울에서부터 한참을 밀리는 찻길, 자매는 시신의 발목을 주무르기도 하고, 얼굴을 쓰다듬고 눈물 짓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둘의 대화가 소설의 팔 할을 차지하는데, 이 또한 시의 순간성이 작가의 자유로운 글쓰기 태도와 함께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대기자들은 한 마디로 그로테스크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에 맞춰 치과에 온 화자는 사랑니 발치를 위해 오래 대기한다. 적잖은 대기자들 중 그의 순번은 네 번째. 간호사들에 의해 결정된 그 순번에 그는 대기하는 내내 집착한다. 네 번째이면서 네 번째이길 원하고, 네 번째로 호명되고 인정받길 원하며, 가능하다면 세 번째로 앞당겨지길 원한다. 그 과정에서 울퉁불퉁한 사건들창문 밖으로 사람이 떨어졌다거나, 창밖을 보고 있던 낯익은 여자가 사라졌다거나, 수녀들과 함께 들어온 노인 중 한 명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앉는다거나, 세 번째인 남자가 대기실을 나갔다가 한참 뒤에 돌아온다거나, 이혼을 준비 중인 아내, 투병 중인 모친과 통화를 한다거나 하는 사건들과 비상식적인 태도로 충돌한다. 비현실적 정황 속에서 묘한 현실성을 풍기면서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숨의 소설집 국수는 빤하지 않은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소설로서는 조금 낯선 감수성을 갈구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를 전위 작가로 바라보는 관점이 가능하다면, 그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한에서 가장 자유로운 전위를 구사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자유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집 국수를 앞에 둔 독자에게 남은 문제라고 할 만한 것은, 그의 고유한 소설적 미학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글을 씁니다. 장르와 장르 사이에서 끓는점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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