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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써야할 것인가_이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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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02 13:41 조회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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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써야할 것인가

 

이기록

 

 

  선배님, 오늘은 창밖에는 봄비가 사뿐히 내리고 있습니다. 건조한 일기로 사고들이 많았었는데 드디어 비가 내립니다. 내리는 비는 짙어진 초록 사이로 어디론가 피할 곳을 찾으라는 듯 천천히 진행합니다.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들어온 커피숍에서 사람들의 소리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오늘 선배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을 써야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시대는 싸워야할 분명했던 대상도 어느 정도 지워졌고 불분명한 자아도 뚜렷한 흔적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맨발로 서서 걸어가는 시대입니다. 모든 주변부의 일상들이 저녁바람처럼 한산하게 불어오는 그런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하지도 불분명하지도 않은 시간과 공간의 틈에서 우리는 이제 무엇을 끄집어 말을 이어야할까요. 작가와 독자가 멀어진 확정되지 않은 시대에 무엇을 써야할 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차분히 시간을 두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곳은 다양한 말들이 공생합니다. 간혹 너무 많은 말들이 스스로 생명을 확장해나가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한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것도 삶의 한 부분일 수 있어서 참아가며 들어봅니다. 그와 그녀는 마주앉아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적어둡니다. 누군가는 들어왔다가 나가고 누군가는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타로카드를 펴고 지나가거나 일어날 일들에 고민하는 일들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이기적이어서 매번 내 안으로만 흐를 준비를 하고 맙니다. 그렇게 난 또 그걸 인정하고 받아드립니다.

 

  흘러간 말들은 그곳에서 켜켜이 쌓인 후 층을 이루어 단단히 굳어갑니다. 전 무슨 글을 써야 할까요. 너무 쉽게 소비되어 한번 지나가고 나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글들이 많습니다. 제 글들은 어디서 두근대며 살아날까요, 아니면 지난 유물처럼 묻혀갈까요.

 

  제 글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 제 글도 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심장에 GPS를 단 것처럼 같은 방향으로만 흘렀던 흔적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쓴다는 행위 자체를 즐거워하다가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너무 지쳐버리고 만 저의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 내 목소리를 잃어버린 듯한 생각이 듭니다. 목소리를 잃어버릴수록 생각은 매번 사람에게 귀결됩니다.

 

  글은 글을 따라 어디로든 흘러들 줄 알기에 한번 쏟아낸 글들은 제가 알아서 필요한 곳이든 불필요한 곳이든 가리지 않고 흘러들어가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손은 언제나 진실을 말해요라고 이성복 시인은 <무한화서>에서 이야기했지만 매번 진실을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글을 위하여 글을 쓴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얼마나 절박한지는 아직도 지속중인 일들이라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쓴다는 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인 듯합니다
 

  고민이 깊어지니 잠이 옵니다. 오는 잠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잠드는 일도 괜찮게 느껴집니다. 모두 흘러가는 일이니까요. 아마 무엇을 써야할지 아주 오래도록 고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아있음을 뚜렷이 느끼는 일들이라 여겨집니다.

 

  나이가 늘어갈수록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는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으니까요. 선배에게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무엇을 써야할까요.

 

 

 

-시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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