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로 갈아신다_임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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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253회 작성일 19-11-15 16:19본문
운동화로 갈아신다
임은주
전남편과 광안리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아이도 함께였다. 둘이 함께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가슴에도 담았다. 이 사람과 헤어지면 이것도 추억이 되리라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아이 곁에 있는 전남편은 아이의 30배 정도로 커보였다.
우리는 헤어지기로 합의했다. 서울 애오개에 있는 가정법원에 협의이혼신청서를 제출했다. 미성년 아이가 있는 우리는 당장 이별하지 못 하고 3개월을 기다렸다. 조정 과정을 거쳐야 해서 친구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사랑하지 못 한 사람이었지만 법원이어서 그런지 자꾸만 눈물이 났다.
전남편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이와 함께 배웅했다. 전남편은 출국 게이트에서 자꾸만 우리를 돌아보았고 딸은 'Daddy'라고 불렀다가 '아빠'라고 불렀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전남편에게 '2년마다 한 번씩 와. 레나가 커가는 것을 지켜봐 줘.'라고 부탁했다. 전남편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현남편과 몇 주 전에 부산 교대에 있는 가정법원에 갔다. 남편은 엉덩이를 비척이며 걷는 습관이 있다. 늘 재빠르게 움직인다. 오너셰프로 일하고 있는데 노동시간이 12시간을 육박한다. 그래도 헤헤 웃으며 말한다. 딸래미와 당신을 위해 일한다며 웃을 때는 눈이 쳐져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자신의 짐을 싸서 떠나겠다며 가게로 가자고 했다. 입버릇처럼 입산수도를 읊곤 했다. 이혼하면 나는 산으로 들어가겠다. 누가 비즈니스를 같이 하자고 하면 파트너쉽으로 해나갈 거다. 당신 혼자서 이 가게를 책임지고 운영해 나가겠나? 빚잔치 하고 6천만원이라도 건져서 전셋방이라도 얻어라. 여자 혼자 아이 교육시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다정한 성격을 가진 남편의 사람좋은 눈길에 그만 울고 말았다.
왜 그렇게 오래 일해야 돼? 새로 셰프도 뽑고 했잖아. 힘든 걸 보는 것도 고역이야. 내가 언제 돈 많이 벌자고 했어? 나는 그저 일 끝나고 당신과 온천천 산책하는 일상을 되찾고 싶을 뿐이야. 나와 송이 때문에 노예처럼 일한다면 그냥 우리가 사라져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고!
어느새 우리는 사업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베이커리 카페는 내가, 베이킹 클래스는 남편이 주도권을 쥐고 잘 해보아야겠다는 데에 합의를 보았다. 7월 18일에는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
굽이 없는 구두를 즐겨신는다. 활동량이 많은 날에는 운동화를 신는다. 이 결혼에 남기로 결정했다. 현남편에게 아직 애정과 미련이 있다. 그러나 유년기에 맺은 엄마와의 집착 관계는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생애 첫 장면에서 엄마가 내게 구조의 눈길을 보냈다고 믿는다. 엄마를 연상시키는 이 세상의 많은 여성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렇게 이성애 결혼제도 안에서 안이하게 살아도 괜찮은지, 자주 회의한다. 내 몸을 모두 풀어헤쳐 동성과 연결을 회복하고 싶다. 이 끊어질듯한 연결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월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에는 붙박이 신발장이 있다. 신발장 안에는 구두와 운동화가 종류별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구두를 신고 지금의 생활을 계속해야 할까? 운동화로 갈아신고 새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만지작거리다가 출근 시간에 늦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