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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 오브 킬링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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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989회 작성일 18-03-2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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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3.22 영화리뷰

영화 리뷰 : 액트 오브 킬링

김민지

 

 

인간은 혼자일 때 보다 집단일 때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인류는 협동을 발견한 덕분에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함께함이 항상 긍정적이진 않았다. 타인과 함께할 때 인간은 훨씬 잔인해지고 뻔뻔해진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은 집단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인간의 폭력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학살과 고문의 기억은 보통 피해자의 입장에서 재구성된다.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나 유족들의 증언을 통해 잊고 싶은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기억이 침식해 사라져버리기 전에 사건의 책임자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야하기 때문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학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목적에 충실함과 동시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선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건을 그려낸다.

 

감독은 실제 학살에 가담했던 가해자들을 찾아가 사건을 재현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들은 1960년대 군부독재가 시작된 이후 반공전선 최전방에 있었다. 정부의 주도로 청년단체가 만들어지고, 그들은 일종의 정치깡패가 되었다. 다수가 벌이는 폭력에 제동을 걸만한 장치는 없었다. 조직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개인은 더욱 과감하고, 무심하게 잔학행위를 벌였다. 그들에게 있어 살인은 남들도 다 하는 평범한 일이었다.

 

인도네시아 사회는 아직까지 당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농민, 노동자, 교육자, 언론인 그리고 중국인에게 가해진 반공산주의·반민주주의·반지성주의적 폭력은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사회에 스며들었다.

 

실제 가해자였던 배우들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재현하면서 일종의 도취를 느낀다. 그것은 조국을 빨갱이로부터 지켜냈으며 치안유지에 기여하였고, 인도네시아인을 위한 사회를 만들었다는, 그리고 그 행동들이 모두 자유로운 인간의 의사표현이었다는 기괴한 환각이다. 당연히 뉘우침은 없다. 죄책감도 없다. 살인 방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배우들의 표정에서 어떤 승리감마저 보이는 듯하다. 그들은 자신만의 신화 속에서 영웅이 된다.

 

감독의 의도는 그저 영웅놀이를 보여주는데 있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해자들은 미묘한 감정변화를 경험한다. 피해자 역할을 재현하는 배우의 심리변화는 특히 더 눈에 띈다. 구금, 심문, 협박, 고문, 그리고 살해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에는 알 수 없었던 피해자의 고통을 체감한 것이다. 배우는 카메라를 향해 묻는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과 그때 그들이 느꼈을 감정이 같을까요?”

감독은 대답한다. “아니요, 달라요. 당신은 지금 이 고통이 곧 끝날 것을 알지만, 그때 그들은 곧 자신의 삶이 끝날 것을 알았을 테니까요.”

 

살아남은 이들은 떠난 이의 심경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비슷하게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공감이 중요한 이유는 그 사소한 감정 하나가 역사의 반복을 막아준다는데 있다. <액트 오브 킬링>의 선택은 그래서 영리하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과정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집단의 광기는 어디서든 재현될 수 있다. 감독의 궁극적 의도는 집단에 속해 눈이 먼 인간의 폭력성을 보여주고, 공감하는 법을 일깨워서 그것이 현실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구역질을 한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게워내지 못한다. 정당하다고 믿었던 과거의 행동들이 이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업보가 되었다. 그것을 알게 된 이상, 그의 지난 삶은 비울만한 것조차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함께라는 이름으로 자행했던 일들의 대가는 반드시 자신을 찾아온다. 그것을 마주할 때, 과거의 삶은 의미를 상실한다. 이것이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광증을 거부해야하는 개인적인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