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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된 사람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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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3-02 10:04 조회2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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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3.02 칼럼

늦된 사람

김민지

 

 

지금이야 그 인기가 조금은 시들해져 더 이상 우리 집에선 보는 사람이 없지만, 한때는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외출을 했다가도 일찍 귀가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티비 속 아이는 분명 엄마나 아빠를 향해 재롱과 애교를 부리는 것이겠지만, 시청자에게는 마치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것 같으니 아이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는 육아란 어느 정도 현실과는 조금 떨어져있는 것 아닌가. 실상 육아에 대한 환상이라는 필터가 끼워진 상태에서 본 것이니 아이들은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했었다.

단기간 동안 봐왔던 아이들도, 장기간 봤던 아이들도 시간이 흐른 뒤 최근의 모습을 찾아보면 몰라보게 성장해있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큰다고 하더니 정말인가보다. 직접적인 육아의 경험이 없는 나로써는 그저 신기한 모습이었는데, 딸 둘에 아들 하나를 키운 엄마가 보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또 그 고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했다. 아이가 하나인 집보다야 당연히 여럿인 집의 육아가 더 힘들고 벅찰 것이다. 아이들의 성향도 제각각이라 그것까지 생각하면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니까.

 

유치를 뽑는 장면을 보며 문득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마지막으로 이가 빠졌던 때가 언제였더라.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 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빠졌던 때는 8살인 2학년 때. 1월 생일이라 남들보다 일찍 학교에 들어갔던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아 또래 친구들이 동생처럼 대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더디고 천천히였다. 방학을 지나고 나면 눈에 띄게 키가 자란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더 작아보였다. 그 땐 나도 얼른 커서 30키로도 넘고 140을 넘기고 싶었다.

 

어느 날 티비를 보는데 성장기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성장판이 닫히면 그 때부턴 키가 자라도 천천히 자란다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티비를 보며 불쑥

니가 셋 중에 제일 늦되더라. 근데 키 작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늦어도 크기는 크더라.” 고 말했다.

실제로 중학교 때 까지 키가 130대 후반이었던 나는 성장판 검사도 받았고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약도 많이 먹었다. 사실 그런 것들이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내 키는 평균보다 작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작은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키에 대한 불만도 없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더디고 천천히 움직였던 것 같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과 내적인 면들까지도. 명백히 따져보면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느리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관찰되는 특정한 시기를 평균으로 보고 그것에 맞춰 빠르다, 느리다를 판단한다. 그것이 절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평균에 다가가야 할 것 같은 강박.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마음은 불안하다.

 

모든 면에서 느린나는 서른두 살을 맞이한 올해, 이제야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친구들이 고민했던 문제들이 나에게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헬륨 풍선 같은 것이었는데, 그 헬륨이 힘을 다 했는지 이제 땅으로 내려와 품에 안겨버린 것이다. 사실 이 풍선을 공중에 띄워놓고 있을 땐 한편으론 안심했고 한편으론 걱정했다.

다들 갖고 있는데 왜 나는 아직이지? 그치만 걱정거리 같으니 일단은 저렇게 두자.’

나도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며 같이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요 며칠간 혼자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전엔 왜 그런 조바심을 가졌는지, 예전의 내 모습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남들보다 느린 내 모습을 알고 기다려줬다면 아마 그와 같은 생각들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하고 또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고민들, 자세히 보지 않았던 부분들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기르려고 한다. 숨어버린 자존감을 끄집어내 햇빛을 보게 하면 전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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