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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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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21 13:15 조회1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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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2.22 서평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김민지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군사용어와 전쟁 위협, 격앙된 논조와 협박, 총을 든 군인, 발사되는 미사일, 출격하는 전투기. 21세기는 폭력의 세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구 곳곳에서 잔인한 힘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공격과 파괴로 점철된 현장소식은 미디어를 통해 안방에 전해진다. ‘정보의 홍수같은 상투적인 표현 속에 죽음과 공포가 생략되어 있다. 분쟁 지역을 넘나드는 기자들의 카메라에는 적나라한 현실이 담긴다. 신문지 위에 매끄럽게 놓여질, TV와 컴퓨터 화면 속에 선명하게 나타날 이미지들이다.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의 일부를 투자해 기꺼이 이 이미지를 바라볼 것이다.

수전 손택이 겨누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통과 절망이 인화된 사진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는 과연 사진을 보는 것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폭력의 중단에 기여할 수 있는지 묻는다. 폭탄이 떨어지는 장소로부터 수천 km 떨어진 사람들이 단지 이미지를 본다는 것만으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손택은 회의적이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제작자의 시선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각도에 따라, 배경에 따라, 촬영기법에 따라 사진이 담는 의미는 달라진다. 때에 따라선 작가의 의도와 상반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예컨대, 척박한 사하라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사진집은 그들 삶의 어려움보다는 피부색과 인종을 강조하게 된다. 그들의 처지는 흑인이기 때문에 합리화된다. 또는 모든 흑인들이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연민을 통해 짐을 내려놓는다. 피사체의 모습을 보며 슬픔을 느끼지만, 자신은 그 고통의 원인과 관계가 없다는 위안을 얻는다. 내 집, 직장, 동네와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의 일들과 내 삶의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어쨌든 그곳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불을 지른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타인의 고통이 담긴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는 연민 정도면 충분하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점차 이미지에 둔감해지고 싫증을 느낀다. 연민과 일시적인 분노에 휩싸인 채 사진을 보던 사람들이 이제 신문의 국제면을 무심하게 넘기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쁘게 건너뛴다. 이렇게 타인의 고통은 글자 그대로 타인의 것이 된다.

 

20년 전 손택이 분석한 이 일련의 과정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사람들은 그때보다 더 많은 고통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손택에게서 이 글을 이끌어낸 사건이 발칸 반도의 학살과 내전이었다면, 지금 미디어를 채우는 것은 시리아 내전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미얀마의 로힝야 족 학살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적나라한 이미지가 되어 실시간으로 웹페이지에 나타난다. 슬픔과 분노에서 출발한 이미지 독해는 일반화와 체념으로, 그리고 무관심으로 나아간다.

비관적이면서 냉정한 현실에 대해 손택이 요구하는 것은 숙고와 사색이다. 타인의 고통조차 하나의 소비대상이 되는 스펙터클의 사회를 극복하려면 천천히 긴 호흡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지 속 존재와 같은 지도 위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 내가 누리는 것들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된다는 현실. 손택은 이미지에 대한 연민에 머물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이런 것들을 사색해보라고 요청한다.

 

타인의 고통을 마주한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사색은 역설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빚어낸다. 그의 표현처럼 사색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의 뒤통수를 내리칠 수는 없기에, 사색과 숙고의 힘은 강하다. 손택은 이러한 역설의 윤리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루소는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기에 인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 내부의 문제든 세계의 문제든 그것을 해결하려면 현실적이고 기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손택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모든 제도와 정책, 협상의 기본에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진지한 태도로 고민할 때 진정한 대안이 마련될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일이다.

-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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