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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관한 해명_이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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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02 10:53 조회3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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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2.02 짧은 소설

어둠에 관한 해

이세윤

 

 

새벽 다섯 시에 맥딜리버리 주문을 한 뒤 옆방으로 가 주영을 깨웠다. 겨울이 성큼 다가와 공기는 한결 더 냉랭해졌고 바깥은 어두워서 이른 시각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침 일찍 어둠을 설치하는 작업을 앞두고 있어 일의 순서와 동선을 계획하느라 잠을 미리 자지 못했다. 친구는 오늘 아침 일찍부터 나를 도우기 위해 어젯밤 우리집에 와서 와인을 한 병씩 나눠 마시고 잤던 것이었다. 새벽잠이 쉽게 놓아주지 않는지 그는 여러 번 뒤척이다 일어난다.

 

드라이어가 요란하게 돌아갈 때쯤 고요했던 새벽은 물러나고 있었고, 아침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도착했다. 결코 맛있지는 않지만 그냥 저냥 먹을만한 아침이다. 주영은 이게 뭐야?”라고 묻고 나쁘지 않네라고 자답한다. 커피가 있고 스크램블 에그가 있고 빵이 있는 최소한의 구성이다.

 

빠름을 깨뜨린다는 의미의 아침(breakfast)은 다시, 빠른 일정으로 깨어진다. 번개용달 사장이 집 앞에 도착해 경적을 울리자 작업실에 쌓아두었던 물품들을 실었다. 짐을 옮길 때 물건들은 크기와 비율로만 분류된다. 정사각, 직사각, 긴 물건가장 긴 물건은 다루끼였다. 트럭을 출발시킨 후 우리는 승용차로 이동하며 만돌린 연주 음악을 들었다. 시청 앞을 지날 때 쯤 완전히 밝은 아침이 되었다. 갤러리에 도착해 지하로 들어가니 트럭은 도착해 있다. 물건을 반쯤 내릴 때 쯤 장의 카렌스가 도착했다. 자동차에서 내릴 때부터 그는 이미 담배를 물고 있는데 담배를 한 대 피고 하자고 한다. 담배를 안피는 사람은 번개용달 사장이다.

 

예감이 좋다. 주영은 섬세한 작업을 빈틈없이 할 것이고 장은 예리한 눈과 두꺼운 손가락으로 목작업을 해결해 줄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섹시하지 않은 존재는 바로 나 같은 사람인데, 작업도 총괄하며 관계자와 협의도 하다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지며 아이덴티티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청년 기획자며 공기관 문화예술팀원들이며 눈이 초롱초롱하게 행사 준비에 들떠있다. 나는 차분히 머릿속에서는 시간과 순서를 차분히 떠올려야 한다. 일이 끝나면 지폐를 세어 나눠 줘야하고 물품 업체, 자재 업체, 렌탈 업체에 잔금을 치러야한다. 그리고 침대에 누우면 의식이 끊어지겠지.

 

, 암막이 모자라!”

 

어둠을 설치하는 일에 암막이 모자라다니. 암막이 한 마라도 모자라면 나머지 암막이 무슨 소용. 빛이 물처럼 빈틈을 파고들어 올 것이다. 암막으로 빈틈만 채우면 작업이 마무리 되는지라 주영과 장과 함께 원단 가게로 출발하기로 했다. 엘리베이터식 주차장에서 내 차가 나왔고 운전대는 장이 잡았다. “하이브리드가 좋긴 좋구먼.” 라디오를 틀자 황병기의 음악이 나온다. 암막을 구입하고 가격을 치르고 나오니 장과 주영은 오뎅을 먹고 있었다. 나도 오뎅 국물을 한 입 마시는데 설치 장소에서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 대로변의 자동차는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있다. 하늘은 맑고 구름이 느긋하게 움직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바지춤의 진동이 멈추지 않는다.

 

낮술 마시고 싶다.”

 

암막으로 빛을 막고 나니, 스피커 위치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스피커 위치를 바꾸려니 선이 짧다. 선을 사러가야 하겠다. 다시 엘리베이터식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출발해 어두컴컴한 전자 상가의 복도를 헤매었다. 케이블을 산 후 갤러리에 돌아오니 택시가 지하 주차장 입구를 막고 있다. ‘뭐 이런 인간이 다있지?’하는 표정을 짓고 기다리는데 도로가 막히게 되는 형국이라 내 뒷차가 경적을 울린다. 그런데, 입구를 막고 있는 택시에서 젊은 여자와 중년 여자가 천천히 내린다. 젊은 여자가 그녀를 부축한다.

 

, 시각장애인.’

 

경적이 울린 순간 젊은 여자는 고개를 돌려 차 안의 나를 본다. 내 표정이 경적을 울릴만한 표정이었는, 표정을 미처 바꾸지 못했다. 누가 보아도 경적을 울린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설치가 끝났다. 하지만 몇 군데 빛이 새는 틈이 있단다. 빛도 새지 않아야하고 드나듦도 가능해야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장과 나는 그것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는 데 몇몇 스텝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보탠다. 명령어도 사용한다. 계속된 말들의 난무 끝에 사다리 위에 올라 장이 화가 났다. 나도 조금 화가 났다.

 

아니, X

 

우리는 거의 완전한 어둠 속에 있던 지라 장의 욕은 곧 나의 욕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을 것임에 분명했다. 그 와중에 장은 완벽하게 한 치의 빛도 들어오지 않도록 해놓고서는 어둠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내가 어둠을 빠져나오니, 사람들의 표정이 좀 달라져 있었다. 냉담하거나 상기되어 있었. 나를 원망하는 것일까. 주차장 입구를 가로막은 택시에서 내렸던 젊은 여자도 있었다. 시선이 잠시 스쳤다.

 

어둠을 만드는 이 작업은 일반인이 시각장애인이 되어보는 체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비슷한 행사는 전국에 많지만 어둠 속에 옷가게가 있고 전시회도 있으며 영화관도 설치해서 어둠 속의 축소판 하루를 만든 것이 특기할만한 점이다. 전시회에는 만져서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부조 그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는 작업 분야이기도 하며 시각 장애인의 장벽을 없애고자 하는 전시회를 개인적으로 열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생각해온 주제이며, 열정 가득한 기획자들 못지않게 나도 애정을 담고 싶은 일이었다.

 

닮고 싶거나 경쟁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던 빛나는 순간이 있다. 미대 입시를 같이 준비하다 만난 J는 그런 친구였는데 지금은 시각장애인으로, 미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해 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녀는 전공을 살리지 못하게 되는 치명타를 고등학교 때 겪게 되었는데 그 충격과 지속적인 어둠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녀와 아이메세지나 페이스타임 오디오로 연락할 때마다 회화 작품이나 건축물의 모습을 말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녀는 시각적인 것들에 여전히 관심이 많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녀는 내가 묘사를 잘한다고 한다. 내 언어가 선명한 그림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다보니 그리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고 그림 그림이라는 내 오랜 내력은 그녀와 관련이 있다.

 

행사가 끝나고 기획자는 함께 한 사람들에게 죄송하단 말을 전할 수 있나요?”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몇몇 사람들에게 다가가 사과했다. 설명하고 해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던 하루에 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 글쓰고 그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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