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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 힐빌리_김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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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1-25 14:56 조회2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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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1.25 칼럼

차브, 힐빌리

김승윤

 

 

차브는 영국의 가난한 백인 노동계급을 일컫는 말이다. 이 말 속에는 노동계급을 향한 경멸과 비난이 담겨있다. 영국의 젊은 정치 활동가 오언 존스는 그의 책 <차브>에서 언론과 정치권이 기획한 노동계급 악마화가 어떻게 영국사회를 벼랑으로 내모는지 낱낱이 분석한다.

차브의 모습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싸구려 공공주택에서 술에 절어 사는 무식한 노동자. 일자리를 얻을 의지도, 능력도 없이 복지수당에 의존하는 중년의 여인. , 마약, 그리고 섹스에 빠져 살다가 끝내 임신해버리고 마는 후드티를 뒤집어 쓴 10대들. 이들이 모두 차브다. 언론은 몇몇 사례를 노동계급 전체의 문제로 확대했고 사람들은 여기에 호응했다. 차브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인 동시에 사귀어선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차브 이미지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주인공 애그시(태런 애저튼 분)와 그 주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패거리를 지어 다니며 술을 마셔대는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집단으로 묘사된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애거시의 엄마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영화가 제시한 해결책은 정장을 빼입고 매너를 배워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몇 안 되는 기회를 거머쥘 수 있는 사람은 주인공 애거시뿐이었다.

켄 로치 감독의 <, 다니엘 블레이크>에도 차브가 등장한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건강에 문제가 생겨 일을 할 수 없는, 가난한 저임금 백인 노동자다. 그의 친구 케이티는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를 홀로 키우기 위해 일용직을 전전하는 워킹맘이다. 다니엘의 이웃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중국에서 직수입한 신발을 노상에서 판매하는 사업을 벌인다. 물론 영화가 차브라는 이미지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그저 이들이 영국의 현실이고, 당면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정치권이 진짜 문제라는 메시지를 던질 뿐이다.

특정 배경을 지닌 계급 혹은 사회 집단에게 낙인을 찍고 비난하는 것은 영국적인 것이 아니다. 예컨대, ‘힐빌리는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와 중서부 지역의 가난한 저학력 백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힐빌리는 무식하고, 가난하며, 광신적으로 종교를 믿고, 유색인종과 성소수자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고집한다. 미국의 고학력 중산층, 특히 정치적으로 리버럴인 사람들은 힐빌리를 경멸한다.(J. D. 벤스,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 2017)

<차브>와 그들이 등장하는 영화들, 그리고 미국의 힐빌리를 횡단하는 이념은 신자유주의다. <차브>는 차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마가렛 대처를 소환한다. 대처리즘으로 불린 무자비한 개인-능력주의는 노동계급에게 무능, 부도덕, 게으름, 무절제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사회 따위는 없고, 오직 개인이 있을 뿐이다.”라는 잠언은 공동체를 해체하고 차브를 남겼다.

<킹스맨><, 다니엘 블레이크>에 나타난 영국은 신자유주의가 몰아닥친 섬나라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킹스맨>이 차브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강조했다면, <, 다니엘 블레이크>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 시도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모습 모두 신자유주의 영국의 현실이다. <킹스맨>이 묘사하는 차브는 과장되고 희화화된 영국 노동계급의 캐리커쳐라면, <, 다니엘 블레이크>가 묘사하는 인물들은 사실적인 영국 노동계급의 초상이다.

힐빌리는 영국과 함께 신자유주의 시대를 이끌고 폭주하는 미국을 상징한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러스트 벨트와 그곳에 거주하는 백인 노동계급은 최악의 대통령을 당선시킨 집단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이들은 원래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노동조합도 활발히 조직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영광을 함께했던 게 바로 힐빌리였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당선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이 펼쳐지면서 추락했다. 이제는 차브화, 그러니까 알코올에 절어 사는 무식하고 보수적인 노동자의 이미지를 부여받고 있다. 힐빌리가 정치·경제적으로 무시당하고 배제되는 과정은 미국이라는 기관차가 서서히 멈추어가는 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영국과 미국의 이야기이니 만큼 한국이라고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마 이곳에서도 차브 혹은 힐빌리의 탄생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과연 악마화될 집단은 어디일까. ‘귀족노조라는 칭호를 획득한 노동조합. 도전하지 않고 노량진으로 향하는 2,30. 태극기 휘날리는 노인. ‘페미나치라는 소름끼치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여성. 이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주민과 성소수자. 한국식 차브가 될 수 있는 후보군은 너무나 많다. 

 

 

 

-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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