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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남씨의 부산_김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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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27 15:02 조회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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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4.28 길 위에서 만난 사람

복남씨의 부산

김기영

 

 

40계단 문화관에서 귀한 전시 <귀환>이 열리고 있다. 25년간 사할린 동포의 삶을 기록해 온 새고려신문사 사진기자 이예식 님의 사진전이다. 작년에 서울에서 열리고 올해 부산동포넷과 KIN(지구촌동포연대) 주관으로 부산에서 전시중이다. 개막식에 정관에 살고계시는 사할린 영주귀국 어르신들을 초청하고 싶다는 동포넷의 연락을 받고 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일정을 말씀드리니 흔쾌히 동의를 하신다.

몇 분쯤 오실 수 있으세요?”

차 한 대 채워서 가지요. 40?”

전화기 너머로 회장님의 웃는 눈매가 그려진다. 그 날의 초대를 위해 동포넷에서 관광버스를 준비했는데 그 차를 다 채워서 오시겠다는 말씀이다.

오프닝 시간에 맞춰 전시장을 찾았다. 작년 연말 파티에서 뵌 이후로 처음이니 무척이나 반갑다. 어르신들도 반겨주신다. 춤을 정말 잘 추시는 김차이주 님, 모스크바 대학 출신의 인텔리 강옥순 부회장님, 7월에 사할린 가신다며 같이 가자시는 총무님, 다들 부산 나들이가 즐거운 모양이다. 그런 중에도 소리꾼 양일동의 소리 한 자락엔 여지없이 또 눈물바람이다. 어머니, 아버지라는 말만 입에 올려도 그분들은 눈가가 촉촉해진다. 작은 목소리로 아는 척을 하는 분이 계신다. 돌아보니 복남 님이다. 정관에 살고계신 사할린동포분들의 이야기를 채록하고 전시 작업을 하면서 이상하게 자꾸만 눈길이 가던 분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흔히 하는 말로 딱 그림이 되는 분이었다. 머리에 고운 수건을 두르고 차를 따라 주셨는데 우리네 할머니들하고는 다른, 어떤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영주귀국자분들의 느낌은 비슷하다. 사할린에서 태어나 60년 정도를 살다가 한국으로 왔으니 러시아풍의 문화가 짙게 스며들어있다.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요청하니 다들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를 대며 손사래를 치는데 복남 님이 선뜻 오케이를 한다. 제대로 이야기를 못 풀어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그냥 괜한 우려였다. 조붓하게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신다. 인터뷰는 한 시간 반이 넘게 진행되었고 첫 만남이 너무나 순조로워 어쩌면 나는 제법 괜찮은 인터뷰어가 아닐까, 하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 뒤로 여러 번 방문을 했고 인터뷰를 하고 촬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나를 살짝 끌어당기며 할 말이 있다고 했다.

, 선생님, 아무래도 저는 빼주세요.”

왜요? 춤이든 노래든 제일 분위기가 좋은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빠지는 게 좋겠어요.”

. 영상 편집에서 빼는 건 괜찮고요, 원하지 않으시면 그렇게 할께요. 근데?”

선생님, 제가 첫 남편이 아니잖아요

그랬다. 그녀의 첫 남편은 고아원 출신이었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는 인터뷰를 할 때 이미 들었다. 연애 이야기를 할 때의 그녀의 반짝이던 눈과 웃음 고운 입매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사실은 부산에 첫 남편의 시누이가 살고 있어요. 사할린동포이야기라고 하면 혹시 보러올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그러면 곤란할 거 같아요.”

아니, 재혼한 게 무슨 잘못이라고?”

재혼하기 전에는 시누님과 정말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데 부산으로 영주귀국하고 한 번도 연락을 안했어요. 찾아가보려고 했지만 길도 잘 모르고, 남편 모르게 나갈 수도 없고해서

주소 아시면 제가 모셔다드릴까요?”

아니요. 시간도 너무 지나고, 미안해서

나는 그녀의 조용한 부탁을 받아들여 영상 편집을 하면서 그녀의 고운 자태는 다 들어냈다. 화면이 밋밋하게 되었다. 어딘가 빈 그 영상물을 보면서 그녀의 신산한 삶의 편린이 유독 안쓰럽게 다가왔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나만 보면 살갑게 웃으며 챙겨주었고 여름에 다녀온 사할린의 빛 고운 바다 사진을 보여주었다.

 

다소곳하게 선생님, 안녕하셨어요?”라며 안부를 물어주시는 복남 님의 얼굴은 여전히 곱다. 나는 정말이지 그녀가 시누님을 만나기를 원한다. 사할린에서, 그리고 부산에서 반쪽씩 살아가는 여생에 그녀의 추억들만이라도 온전하게 함께하기를.

 

 

 

-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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