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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시간의 층위1_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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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2-21 13:28 조회3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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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12.21 기행문

세 가지 시간의 층위1

- 재일동포 유적지 답사 및 교류, 동포넷 16차  방문단 인상기 -

정재운

방문단은 지난 시월 십구일, 부산을 떠나 다음날인 이십일 아침, 하카다국제여객터미널에 닿았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두 달여가 흐른 이제야 어떤 인상기를 쓰기 위해 눈을 감는다. 내 안에 부유물처럼 일정한 형을 가진 기억이 언어의 외피를 입고 문장으로 나오길 기다려보지만, 자꾸만 발목이 잡힌다. 그간의 지체만도 충분하잖나, 타이르기도 한다. 두 달은 여정의 감상을 뭉툭하게 만들기 충분한 시간이다. 횟배를 앓는 사람처럼 조바심이 꾸르륵 소리를 낸다. 이 방문기가 쓰이기 위해선 내 안에 세 가지 시간의 층위가 정리되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여행 이후 지난 두 달의 시간을 어떻게 흘려보냈는지, 그러한 시간이 왜 필요했는지 홉뜬 눈으로 되물어야할 것이다. 답사 당시로부터 멀리 떨어지면서 흘리고만 기억과 내게서 빠져나가버린, 반드시 표지해야 할 진실들을 허리 숙여 줍고 또 주워야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거나, 의미를 부풀리고 개인적인 감상에 젖었던 부분들도 가지런해졌는지 내 안을 되작여봐야 할 것이다. 그렇담 의외의 소득이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일본에서 보낸 사오 일의 시간이다. 겨우 며칠, 이라고 중얼거린다. 역사의 그늘에 맺힌 한의 끄트머리를 핥은 고 며칠, 나는 꽤 쓰라렸던 것 같다. 세월 속에서 진실은 더욱 날카롭게 벼려있었다. 아래 이어질 글은 서두완 달리 여정에 의거해 비교적 충실히 서술을 해나갈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배 여행은 처음이었다. 유동하는 땅 위에서 일행은 모두 태연해보였다. 뛰고 까부는 아이들 속에서 나만 출렁거리는 위장으로 자판기에서 뽑은 맥주를 들이부으며, 앉으나 서나 불편하긴 매한가지인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어디 배 여행만 처음이랴, 일본행도 처음이다. 서른 줄에 이슥히 접어들어서도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 없던 나는 몇 해 사이, 자주 비행기를 타게 됐다. 제주로 가자, 남들 다 그리로 가질 않냐, 제법 신경질을 냈던 것 같은데, 뭣이 서러운지 아내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결혼사진도 안 찍고, 반지도 안 하겠다고 해, 이럴 거면 그냥 동거나 다름없질 않느냐고 대들던 모습이 훤하다. 덧붙여 그녀는 어느 시절 신혼여행이기에 제주냐 제주가했다. 허참, 우리 부모님은 해운대로 갔었단다. 호텔 앞에서 사진만 찍고 바로 여인숙에 묵었다는 얘기에 그녀는 기함할 듯이 놀랐었다. 해운대 대신 하와이로 첫 외국여행길에 올랐을 때, 현지에서 꽤 많은 한국인을 만나곤 속으로 놀랐다. 내겐 맨 먼저인 순간이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다녀간 곳이란 새삼스런 자각이 일었던 것이다. 내게 일본이란 나라는 하와이보다 얼마나 가까울까.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멀고 가까움을 재는 일이 막대자라도 있을 때야 손쉽겠지만, 것도 없어 두 팔이라도 벌려 잴 수 있기라도 하면 또 모를까, 마음 안에서 뻗어간 그 거리를 재는 건 요령부득만 같다. 배는 어둔 물 위를 달린다. 거대한 쇳덩이로 이뤄진 배에 납작 업힌 채, 내리누르는 졸음을 이고 버틴다. 양쪽 눈이 차례로 감긴다. 그러다 다시 홉뜬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완전히 잠에 빠진다.

선실 창으로 들이치는 아침 빛살이 눈꺼풀을 간질인다. 실눈을 뜨고 보는 태양이 손바닥에 완전히 가린다. 태양과 나 사이에 손바닥이 있다. 해운대 신혼여행과 하와이 신혼여행 사이엔 삼십여 년의 세월이 있고, 한국과 일본 사이엔 검은 바다와 뱃멀미가 있었다. 시월 이십일, 하카다국제여객터미널에 발을 내딛었다. 숱한 조선인이 내딛었을 이 땅 위에도 소록소록 세월은 쌓였을 테지만, 그 세월쯤 내겐 무엇도 감각될 수 없는 맨 처음인 순간이다. 염치도 없이 불편한 속도 멀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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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에는 해치백 스타일의 뒤가 납작한 자동차들이 흔하게 눈에 들어왔다. 좋게 말하면 타인에 대한 배려겠지만, 결국 배타적 결벽성이 들여다보이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약임을 모르지 않지만그래, 후쿠오카행의 이유가 적어도 아내와의 소꿉놀이 같은 건 아니지 않은가. 연극적인 발상으로 마음을 뾰족하게 만들어본다. 그런 마음도 아침상을 앞두고는 곧 허물어졌다. 우동 가게에 밴 희미한 간장 달인 내가 긴장을 녹였다.

우리는 단층 주택 일색인 일본식 가정집들로 이뤄진 풍경을 달려서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의 아소 요시쿠마 탄광터에 내렸다. 꼬맹이들 키만큼 웃자란 잡풀과 유채꽃이 시월의 바람에 흔들리는 공터를 휘둘러보며 비석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1982년에 세워진 이 비석의 뒷면에는 사고로 돌아가신 넋들의 이름과 나이가 빼곡하게 새겨져있었다. 석 자로 오목새김 된 이름은 조선인일 것이다. 더듬더듬 읽어낼 수 있는 한자를 솎아 내다 허방을 디딘 듯 놀란다. 그들의 나이가 터무니없이 어리기 때문.

사고는 1936, 있었다 했다. 그로부터 팔십 년 세월이 흐른 이 고요한 대기 속에서 탄광마을의 과거는 쉬 떠오르지 않았다. “, , ……아무도 모르게 주억거리며 입술을 달싹인다. 金漢秀(김한수) , 당신과 난 한 살 차이로군요. 제겐 아내가 있습니다. 그녀는 결혼해 한동안은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버스로 이십 분만 가면 볼 수 있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설거지하다가도 빼 울곤 했지요. , 어쩐지 흉을 보고 싶어지네요. 당신에게도 이렇게 흉볼 아내가 있나요? 아니, 있었나요? 이즈음보다 그땐 장가를 빨리들 갔을 테니 이미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얼굴과 성정을 쏙 빼닮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제겐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니 여쭈어보는 겁니다. 당신은 당연히 내게 대답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런 당신의 시간을, 이렇게 한 줄로 요해도 되는 걸까요? ‘일본으로 끌려가 아소 탄광에서 혹사당하다 해방을 맞기도 전에 숨졌다.’ 스물다섯 청년 金辛德(김신덕) , 당신이 돌아가실 나이에 나는 또래보다 조금 늦게 입대한 복무를 막 끝마치고 있었겠네요. 온통 세상이 내 것만 같아, 내 뜻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그즈음의 난 읽고 쓰기에 몰두해있었습니다. 문청으로의 투신이 꽤 낭만적이라 여겼던 까닭이지요. 일종의 허영이었을 겁니다. 그 시절 속의 난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을, 비문투성이의 장편소설을 썼습니다. 요란한 열정에 저 홀로 몰두해있던 그 나이 스물다섯, 당신은 죽음으로 걸어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가신 넋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지만, 내겐 당신들의 이름 석 자를 읽어낼 지성이 없습니다. 이 까막눈의 무지가 미안하고, 화도 납니다. 이제 떠나야겠습니다. 우리는 헌화와 묵념 끝에 탄광터를 등졌다.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터를 빙 둘러싸고 있는 낮은 집들의 식물적인 풍경 속에서 씻은 듯 과거를 지워낸 현재의 무정함이 감각되었다. 그리곤 이 멀끔함이 미워졌다. 이즈음에야 겨우 그들이 잠든 땅에 닿은 나란 속인(俗人)의 무정함을 미워하는 건 덤이다. 들으니, 탄광터의 이름이 아소인 것은 그 가문의 실질적 소유를 나타내고 있는 명명이란다. 그 이름은 내게도 낯설지 않다. 한때 일본 외상이었던 그 이름, 지역의 유지가 대를 이어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일본의 후진적 민주주의 시스템을 새삼 느낀다. 뒤돌아 걷는 길에 탄광터 한 편의 미끄럼틀이 눈에 들어온다. 퇴락한 그것과 그네는 진작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주택가와 어울리지 않는 모양으로 존재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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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시간의 층위2>에서 이어집니다.

- 부산민예총 사무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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